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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결 Apr 17. 2021

나의 미세한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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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되는대로 살아왔었다. 어릴 적 삶은 엄마가 좋아할 것 같은 일이 늘 중심이었다. 그러니 내가 온전히 행복할 리가 없었다. 그렇게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며 커왔고, 나이가 차니 어른들의 잔소리가 지겨워 결혼을 했다.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심정이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시간은 부족했고 바빴고 몸에 힘도 없어졌다. 그냥 이렇게 살다가 죽겠지 하는 무의식 중 체념 같은 게 생겼다.


하지만 아이가 태어나고 나는 아이에게 부끄럽지 않은 엄마가 되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아무튼 욕심은 많은 사람이니까. 그렇지만 뭘 어떻게? 내가 누구인지, 뭘 원하는지, 어떤 게 괜찮은 삶인지 나도 잘 모르는데. 그저 책에서, 주변에서 좋다 하는 것들만, 좋아 보이는 것들만 허겁지겁 취하기 바빴던 나였는데.


어느 날 엄마라는 자리를 통해 나,를 인식하는 나를 발견했다. 아이가 잘 크길 바랐고, 그 마음만큼 나 자신이 잘 살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나를 알아가는 연습을 시작했다.


긴 시간이었다. 내가 뭘 원하는지를 알아채고 시행하고 포기하고 또 시행하기를 6년째. 이제야 나는 나를 조금 알 것 같은 기분이다. 아무튼 적응이 변화에 대한 적응이 느린 사람이라니까, 나란 사람. 이제는 아주 미세하게 내가 뭔가 변한듯한 느낌이 든다. 이 조그마한 변화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 미세한 변화를 눈치채기 시작한 건 사온 야채를 냉장고에 넣기 전 손질하는 내 모습에서였다. 먹다가 남은 건 버리기 일쑤였다. 미리 손질해서 놓는다는 건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새 나는 하나라도 버리지 않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내 손에 온 것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작은 것에도 전달되는 느낌?


주변에 많은 것들이 조금 더 편안하게 느껴지고, 뭔가를 자꾸 인정하게 된다. 진심으로. 진심으로 인정하게 되니 어떻게 해야 할지도 보이는 것 같다.


어떤 것에 욕심내지 않고 노력하지 않아도, 내가 가진 그대로 충만한 사람이라고 믿고 싶었다. 바람이었는데, 이젠 훨씬 가까워진 듯한 느낌이다. 그냥 그대로의 나도 꽤 괜찮은 사람이라는 걸 더 진심에 가까운 마음으로 생각하게 되었달까.


<에세이를 만드는 법>에서 저자는 '에세이라는 글이 한 사람의 결과 바닥을 그대로 드러내는 적나라하고도 무서운 장르'라고 했다. 이제 내가 쓰는 에세이에도 날것의 내가 아름답게 보일까?



오랜만에 새 책을 샀다. 기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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