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결 Sep 11. 2020

강아지

매일글쓰기 D-11   with conceptzine

유독 동물을 좋아하는 첫째는, 한동안 강아지 강아지 노래를 불렀었다. 애견카페도 많이 가곤 했지만, 자신만의 강아지를 갖고 싶다는 열망이 쉬이 식지 않는 듯했다.


사실 나도 강아지를 좋아한다. 집에서 강아지를 한번 길러보고 싶다는 생각은 했으나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았다. 아마 누가 버려진 강아지라고, 내가 기르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으면 덥석 받았을지도 모르지만. 기르기로 결심하고 찾아낸 한 생명을 책임진다는 것이_스스로 선택한 것의 책임감이_ 너무 크게 다가왔다.


첫째가 강아지를 그렇게 좋아하는데도 선뜻 기르자고 하지 못한 것도 내가 준비가 되지 않아서가 가장 큰 이유다. 대부분 아이가 좋아해서 데려와도 끝까지 책임지는 사람은 엄마라는 얘길 많이 들었고, 일을 하고 있던 엄마라, 강아지까지 책임질 여유가 없기도 했다.


그러던 차 휴직을 하고, 강아지를 키워볼까, 하는 생각이 다시 강하게 일었다. 그런 낌새를 챘는지 아이의 요구 강도도 거쎄졌다. 그럼 강아지를 한번 길러보자!로 마음을 돌렸을 땐 엄마 집에 한 달 살기를 하러 가기 전이었다. 시골에서 방학을 보내고 온 후에 강아지를 데리러 가자고 아이와 협의를 했다.


강아지를 데려오는 건 유기견으로 하자고 정했다. 버려진 생명을 보듬는 것 자체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 달이 지나고 강아지를 진짜 데리고 오려니 또 한가득 걱정이 앞섰다. 휴직 중이라 살림도 빠듯한데, 강아지까지 먹여 살릴 수 있을까? 혹시 아프기라도 하면 어쩌지? 하며 혼자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 거다.


먹이는 거야 어찌어찌해볼 수 있을 것 같아도, 만약 아프기라도 하면 낭패였다. 강아지 의료비에 대한 여유자금은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진짜 강아지를 데려오기로 맘먹으니 이왕이면 믹스견보다는 혈통이 있는 애를 데려오고 싶다는 욕심도 일었다. 믹스견은 너무 클 것 같다는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대면서.


그렇게 혼자서 마음이 갈팡질팡 하고 있는데, 첫째는 다른 의미로 마음이 갈팡질팡 하고 있었나 보다. 갖고 싶은 장난감이 있는데 그게 너무 갖고 싶은데 자기가 모은 돈으로는 살 수 없고, 엄마의 상태를 보니 강아지 데려오는 걸 걱정하는 듯도 해서 금방 데리고 올 것 같진 않고.( 애들과 강아지 키우는 비용 문제에 대해 얘기하면서 걱정을 좀 했었다.)


어젯밤 첫째가 나를 부르더니 '엄마, 나 강아지 데리고 오는 대신, 장난감 하나만 사주면 안 돼?' 하는 게 아닌가. 아니! 강아지에 대한 생각이 고작 그거밖에 안됐단 말인가, 실망하면서도 내심 안심했다. 장난감 하나로 강아지 소유권을 포기하는 상태로 미뤄짐작해 시간이 흐르면 강아지의 모든 케어는 내가 하게 될 게 분명하니. 지금 이런 아이의 마음 상태를 알게 된 건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강아지를 포기한다는 각서를 받고 장난감을 주문해줬다.

그런데 그러고 나니 내가 너무 서운하다. 강아지가 오면 힘들일들만 생각하느라 진을 빼긴 했어도, 강아지가 옴으로써 행복할 일들도 많이 상상했기 때문이다. 쪼그만 똥강생이 꼬리를 흔들며 안기려고 쪼르르 달려오는 모습을 많이 상상했었다. 조그만 몸을 포근하게 껴안는 상상도.


이제 우리 집에 그런 생명이 더 들어오지 않는다고 생각하니. 시원 섭섭. 상상으로 벌써 키우고 보낸 느낌이 든다. 그래도 누군가, 안 되겠다고 강아지를 좀 맡아주면 안 되겠냐고 나에게 애원한다면, 덥석 강아지를 데려올지도 모른다.

작가의 이전글 쉽지 않은 아이 키우기, 나 다스리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