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결 Mar 05. 2021

내가 문제야

매일글쓰기


마침 신랑이 늦게 들어오고, 둘째가 태권도 선수단 훈련을 가서 오랜만에 첫째와 둘이서 보낼 시간이 생겼다.

첫째가 전에 국수나무라는 음식점에 가고 싶다고 했던 게 생각이 나서 우린 둘이서 손을 잡고 어스름한 저녁 길을 걸었다.


해가 많이 길어졌는지 6시 반이 넘었는데도 그리 어둡지 않았다. 벌써 5학년인 남자아이가 아직도 엄마 손을 잡고 걷는 걸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것에 안도했다. 아이와 나누는 대화가 그렇게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시간이었다.


음식점에 도착해서 첫째는 국수를 시키고 나는 소고기덮밥을 시켰다. 기다리는 새에 아이는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하지 마'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지금, 이 시간 나는 참 좋으니까 '하지 마'란 말로 '내' 기분은 망치고 싶지 않았다.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으니 아이는 기회를 포착했다는 듯이 대범해졌다. 밥을 먹다 말고 게임을 하기 시작한 거다. 그 와중에도 분위기에 취해있던 나는 아이에게 국수를 떠먹여 주고 있었다. 세상 좋은 엄마 미소를 지으면서.


그러다가, 어? 나 지금 뭐 하고 있지? 하는 현타가 왔다.

이게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었을 때는 이미 늦었다.


내가 자초한 일이니 처음엔 꾸욱 참았다.  '이제 그만하자'라고 1차 얘기. 갑자기 분위기를 바꾸는 엄마를 눈치채지 못한 아이는 '아 이것만 할게' 했다. 그때부터 뒷목이 뻐근하기 시작하더니 화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이제 그만 가자' 2차 얘기를 한 이후에도 아이는 약 5분쯤을 더 끌었다. 


문을 열고 나오는데, 뒤따라 나오는 아이가 나올 수 있게 문을 잡아주지 않았다. 그동안 쌓인 게임에 대한 스트레스가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것 같았다. 아이는 뭔가 잘못된 것을 깨달았는지 뒤에서 저벅저벅 따라왔다.


처음 밥 먹으러 갈 때의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 ' 아... 정말' 이러고 싶지 않았는데. 애초에 내가 문제였다. 밥 먹을 때는 밥만 먹자고 했어야 했는데. 아이가 좋아하는 걸 하게 해서 기분 좋게 해주고 싶었나 보다. 


조금 걸으니 마음이 가라앉았다. 아이를 옆으로 불렀다. 그리고는 앞으로는 밥 먹을 때는 게임을 하지 말자고 했다. 그리고 엄마는 너에게 '하지 마' '빨리해' '공부해' 얘기를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아이는 묵묵부답. 


그렇게 조금 더 걷다가 다시 손을 잡았다. 애초에 내가 잘못한 일이었다. 우유부단한 엄마. 왔다 갔다 하는 엄마. 아... 내가 중심을 잘 잡아야 아이도 그러지 않을 텐데 하는 자책. 


조금 더 현명한 사람이면 좋겠다. 단단한 사람이면 좋겠다. 정말.

작가의 이전글 얼마나 벌어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