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격 발표는 수요일 저녁이었다. 출근일은 다다음주 월요일이었으니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10일이었다. 가장 먼저 생각난 일은 엄마를 위한 선물을 사는 것이었다. 나에게 엄마는 가장 가까운 가족이자 친구이다. 엄마는 외동딸인 나를 공부시키기 위해 악착같이 살았다. 사실, 살았다기보다는 그 세월을 버텨냈다. 아버지의 부채와 그로 인한 위기 속에서도 온몸으로 막아서며 나를 지켜주었다. 이런 엄마에게 이제는 자식을 다 키우셨다고, 그동안 감사했다는 의미로 선물을 하고 싶었다.
선물을 고르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예전부터 마음에 담아둔 것이 있었다. 바로 '오팔 반지'였다.
어린 시절의 나는 집에서 엄마의 패물 반지를 끼고 노는 것을 좋아했다. 그중 엄마가 가장 아끼는 것은 오팔로 만들어진 반지였다. 여느 날도 학교를 마치고 장롱 아래 있는 상자를 열었는데 모든 게 사라져 있었다. 엄마에게 물어봤더니 엄마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윽고 알게 된 것은, 빚 독촉에 시달리던 아버지가 결국 엄마의 패물에까지 몰래 손을 대었다는 사실이었다. 다른 곳에서 대금을 받아서 채워 넣으려 했다는 변명을 듣는 엄마의 심정은 어땠을까. 통화를 마친 엄마는 보석함을 보며 씁쓸히 말했다.
"오팔 반지만 남겨주지......"
어린 시절이지만 강렬히 남은 이 기억 때문에 나는 엄마에게 꼭 오팔 반지를 사주고 싶었다. 그래서 그동안 모은 돈을 가지고 주변의 금은방을 돌아다녔다. 오팔은 인기 있는 보석이 아니라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렇게 다섯 번째 가게를 들어갔을 때 마침내 원하는 물건을 찾을 수 있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작은 박스를 들고 돌아온 나는 엄마에게 선물을 내밀었다. 무뚝뚝한 딸이라 편지는 적지 않았다. 그리고 내 기억 속 이야기도 엄마에게 하지 않았다. 그냥 엄마가 오팔 반지를 좋아했더라고 얼버무렸다. 반지를 받은 엄마는 이내 반지를 껴보며 좋아하다가 식당일로 늙어버린 본인의 손을 보며 슬퍼했다. 조금 더 빨리 전해주지 못한 것이 미안해졌다. 그리고 앞으로 월급을 받아서 더 좋은 것들을 선물하는 딸이 되겠다고 다시 한번 다짐했다. 그렇게 나의 자유시간은 내가 일해야 하는 이유를 마음에 새기는 날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