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일기
(2015년, 엄마와 함께 바라본 Mexico, Cancun의 석양 )
엄마의 다리가 아프다. 10년 전 산에서 삐끗한 그 순간부터 시작된 미세한 통증은, 지난 10년간 엄마의 한걸음 한걸음 적마다 콕콕콕 찌르며 방해하더니. 결국 대퇴부무혈성괴사라는 진단과 함께 고관절 인공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의사의 소견이 나왔다. 엄마의 고관절 연골은 하루하루 닳고 있었던 것이다.
수술 확정과 함께 입원날짜를 받아왔다는 엄마의 말에 마음이 무거웠다. 개인적 사정 때문에 미국에서 한국으로 내 맘대로 갈 수 없다는 사실 또한 내 마음을 더 무겁게 했다. 엄마는 괜찮다며, 수술 잘 받고 건강하게 다시 두 딸들 손 붙잡고 세계여행을 할 거라는 말로 나를 오히려 위로해주셨는데, 통화를 끊고 꺽꺽 울고 나니 참 모든 게 다 헛헛했다. 내게 엄마는 또 다른 하늘인데, 엄마와 지구 반대편에서 이렇게 10년이라는 시간을 보내고 나니 함께하지 못한 것들이 너무 많이 생각난다. 매년 한국을 간 것도 아니니 아마 엄마를 본 시간은 10번도 채 안될 듯. 함께한 일수는 지난 10년간 아마 반년도 채 되지 않을 것이다. 고작 33살에서 34살이 되었다고 슬퍼하며 내 나이 먹는 것만 생각하다가 엄마의 소식을 들으니... 참 나도 말로만 효도하는구나 싶다.
내게 엄마의 존재는 특별하다. 지난 10년간 내가 여기서 몸과 마음이 건강하게 제대로 버티며 성장할 수 있었던 8할은 엄마의 믿음이고 기도였다. 그냥 늘 '우리 큰딸 최고~'라고 말해주는 엄마의 그 한마디로 여기까지 온 것인데, 엄마는 아직도 내게 더 많이 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만 하신다.
내가 유학생일 적, 엄마가 뉴욕에 놀러 오신 적이 있다. 그때 엄마는 정말 맘에 들어하는 신발을 만져보고 신어보시다, 결국 딸 더 좋은 거 사라며 엄마는 운동화가 제일 편하다며 내려놓았던 구두가 있었다. 지금이라면 10켤레고 20켤레고 사드릴 수 있지만, 그때는 내가 공부하는 학생이어서 그냥 내려놓고 왔던 기억이 있다. 그때의 아쉬운 마음이 너무 컸었는지, 내가 직장인이 된 후 엄마가 다시 뉴욕에 오셨을 때 가장 먼저 한 것이 좋은 구두 한 켤레 사드린 것이다. 그때 일 이후로 아마 두고두고 생각이 났던 것 같다. 빨리 내 돈 벌어 더 좋은 거 사드려야지... 하고. 좋은 구두만 보면 우리 엄마 생각이 난다. 이 신을 신고 좋은 곳만 다니셨으면 좋겠는데, 나와 함께 아직 못 가본 곳에서 쌓을 추억이 아직 이렇게 많고 많은데, 그곳에 다 가볼 수 있도록 엄마의 다리가 더 이상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엄마 몸이 약한 편이어서 독한 마취와 수술 후 재활치료가 많이 걱정된다. 마음과 정신이 강하고 긍정적인 분이시기에 물론 잘 이겨내시리라 의심치 않지만, 밀려드는 걱정과 불안을 막아내기엔 내 마음이 엄마라는 이름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진다.
이 또한 다 지나가리라
내게 큰 위안을 주는 말 중 하나이다. 다시 한번 이 말에 기대어 보기로 하자. 결국, 이 또한 다 지나갈테니.
이천십육년, 유월 구일, 목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