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의 목적은 완벽이 아니라 도전이다
패션의 목적은 완벽이 아니라 도전이다. 패션에서의 완벽함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탈리아에서 종종 쓰는 "스프레차투라"라는 말이 있다. 사전적인 의미로는 경멸, 경시 등이지만 쓰임은 '어려운 일이라도 어렵지 않게 해결하는 것'으로 쓰이고 패션에서는 '의도된 무심함' 정도로 사용한다. 완벽한 스타일에 한두 가지 미스를 일부러 넣는 것인데, 이것은 패션에서 너무 애쓴 것처럼 보이면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패션을 할 때 왠지 완벽함을 추구해야 할거 같은 순간이 있다. 그럴 때는 검증된 패션의 공식 같은 걸 따라가게 되는데, 예를 들면 상의가 블랙이면 하의는 무슨 색이 잘어울린다는 조합이나. 모 브랜드의 부츠에는 무조건 어느 브랜드 청바지를 입어야 한다는 공식 같은 것을 말한다. 이러한 공식은 분명 도움은 되지만 다음 스텝으로 넘어 갈수는 없다. 모나미룩 같은 클론룩이 많아지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누군가가 완벽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최고의 패션은 누군가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최악의 패션이 되기도 한다. 시대상을 반영하는 패션에서 최고의 패션은, 얼마 뒤 최악의 패션이 되기도 하며, 세월의 흐름에 맞춰 패션은 다음 스텝으로 넘어가야 한다. 이렇듯 기준조차 세울 수 없을 만큼 변화무쌍한 것이 패션의 진짜 모습이고 이것은 패션을 이해하고 완벽할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게 되는 몇가지 이유가 된다.
옷장에 옷이 가득 쌓여있음에도 입을 옷이 없다는 누군가의 말을 몇 번쯤은 들어보거나 직접 경험해 봤을 것이다. 이건 옷이 아무리 많아도 완벽할 수 없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때문에 패션의 목적은 도전이 되어야 한다. 편견 없는 새로운 스타일을 찾아 시도해 보고, 나만의 스타일에 더하기와 빼기를 반복해야 한다. 이는 오직 나만의 만족을 위한 행위가 되어야 하고, 과정에서 오는 높아지는 자존감과 성장하는 취향은 보너스가 되어 따라온다.
패션은 아이러니하게도 완벽에서 멀어질수록 드러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