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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이 사라진 패션

남성복에서 가장 먼저 사라진 것

by 유케이

낭만적인 패션이란 무엇일까, 너무 광범위한 거 같으니 범위를 좁혀서, 남성복에서의 낭만이란 무엇일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아마도 수트이지 않을까 싶다. 한때 수트를 입고 출근하는 남성의 모습은 보편적인 안정감과 신뢰감을 주는 비즈니스맨이라는 동경에 대상이 되어 멋진 양복차림을 원하던 시대가 있었다.


2015년에 개봉한 영화 “인턴” 에서 시니어 인턴을 하게 된 벤(로버트 드니로)은 캐주얼한 회사생활에서 풀 수트를 고집하며 다시 한번 회사생활을 시작한다. 오래된 브리프케이스 속 아날로그 감성이 가득한 필기도구와 계산기를 보는 다른 사원들의 눈에는 비효율과 올드함 일 뿐이다. 새로운 시스템을 배우고 자기만의 방식 또한 유지하며 시니어의 유연함을 보여주는 벤은 시간이 흐를수록 주변동료들을 매료시킨다. 벤의 입사동료인 데이비스는 완벽한 너드남 스타일로 벤이 손수건을 왜 가지고 다니는지 이해할 수 없지만, 벤과 가까워지고 빈티지 넥타이를 선물 받으면서 데이비스의 스타일은 바뀌기 시작한다. 벤이 고수하는 수트차림은 전통적인 남성복에서 오랜 시간 전투복과도 같은 상징성과 올바른 태도를 보여주는방식이기에 벤은 최선을 다해 수트를 입고 출근을 한다.

거리에서 수트를 입은 사람은 좀처럼 쉽게 찾아볼 수 없다. 보수적인 증권가에서도 수트는 선택사항이 되어가고 재킷은 필요시에만 입는다. 현대사회에 들어서 수트는 비효율적인 아이템이 되었는데, 내추럴을 선호하는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요즘 패션에서 수고스러움은 사라지고 편리함만이 남아 있다. 드라이핏 같은 특수한 의류는 세탁 후에도 금방 마르고 의류관리기기는 다림질을 따로 하지 않도록 관리해 준다.

수트는 수고스러움이다. 모두 비슷한 수고스러움을 거치기에 상대방이 얼마나 성실한지, 준비를 했는지를 짐작해 볼 수 있는 것이다. 모두 비슷하지 않은 패션에서의 수고스러움은 누군가에겐 낭만일수도 있지만 누군가에겐 비효율적인 번거로운 수단이 되기도 한다.


패션에서의 낭만은 태도다. 수트는 상대방에게 태도를 보여줄 수 있는 수단 중 하나였다. 극한의 효율성을 우선시하는 현대사회에서의 낭만은 비효율이 된다. 패션은 상대적이기 때문에 효율성을 따지기에는 거리가 좀 있지만 현대사회의 효율성은 비교의 수단으로 보면 될 것이다. 또한 효율성을 찾는 이유는 타자의 시선이 개입되기 때문이다. 얼마 전 화제가 되었던 '낭만러너'를 보면 타자의 시선이 개입하지 않은 결과를 보여준다. 그저 필요한 만큼 좋아하고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는 만큼만 했을 뿐인데 사람들은 그것을 '낭만'이라 부른다. 사실 이것조차 타자와 비교를 하기 때문에 나온 결과인 점은, 현대사회에서 우리는 타자의 시선이 가지는 무게감을 체감하고 있다는 것이다.




시대상을 반영하는 패션의 흐름은 대단히 빠르다. 우리가 생각하는 패션에서의 디폴트는 언제든 바뀐다. 비즈니스맨의 상징인 수트를 입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언젠가 결혼식장에 커플 청바지를 입고 등장하는 신랑신부가 생길지 누가 알겠는가. 패션에서의 낭만은 타자의 시선 따위는 저리 치워버리고, 시대가 바뀌어도 디폴트가 바뀌어도 수고스럽더라도, 필요한 만큼 하고 싶은 만큼 하다 보면 누군가는 이걸 서서히 '낭만'이라 부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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