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촌요구르트 연속 인터뷰(4)_신준수 말하고 호호동호 정리
신준수씨는 평촌목장의 2대 목장주로, 마을에서 나고 자라 풀무고를 졸업했습니다. 그와 나눈 대화가 혼자 듣기 아까워 마을 이웃들과 나눕니다.
젖소는 원래 뿔이 있는 동물인데요. 보통의 젖소에게 뿔이 없는 것은, 송아지일 때 뿔이 나오는 부분을 지져서 안 나오게 하기 때문이에요. 제각이라고 해요. 평촌의 늙은 소들도 뿔이 없어요. 하지만 젊은 소들은 뿔이 있어요. 지금은 제각除角을 안 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2018년 스위스에서 국민 투표를 했더라고요. 소의 뿔을 그대로 두는 법안을 만들어서 뿔이 있는 소를 키우는 농가에 연간 22만 원의 보조금을 주자고요. ‘가축의 존엄성 유지 법안’이라고 하더군요. 소의 존엄성을 지켜줘야 한다는 의견과 소뿔이 위험하다는 의견이 팽팽했는데요. 54% 반대로 부결되긴 했지만 상당수 사람들이 존엄성에 찬성했대요.
뿔이라는 게 젖소에게 있어 신체의 일부인데요. 뿔에 신경과 혈관이 있어서 제거하는 과정에 고통이 있어요. 왜 젖소의 뿔을 없애냐면 사람과 계속 만나니까 위험하고, 지들끼리 붙어있으니까 다쳐요. 하지만 뿔이 있는 것과 없는 것에는 분명 차이가 있을 것 같아요. 생명역동농법에서도 소뿔을 우주의 기운을 받는데 매개체로 쓰잖아요. 하다못해 살아있는 뿔도 어떤 역할을 하겠죠. 면역성이 높아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는데요. 뿔이 소의 체온 유지와 소화기능과 관련이 있다는 연구결과도 있대요.
일단 뿔이 있으면 사람도 소에 대해 조심하게 돼요. 그게 정당한 게 아닌가 싶어요. 소는 공격할 거라곤 뿔 밖에 없으니까요. 사람과 소가 조금이라도 대등한 위치에서 서려면 뿔이라도 있어야죠. 제가 소에게 간혹 막대하고 싶은 마음을 막을 수 있는 장치요. 나만 편하자고 없애는 건 유기농 목장에선 조금 비겁하다 생각해서, 몇 년 전부터 없애지 않고 있어요. 소의 자연스러움을 보고 싶은 것도 있어요. 젖소를 도구나 수단으로 본다면 뿔을 자르겠지만, 가족이라고 생각하니 자를 수 없는 것 같아요. 물론 끝이 뾰족한 뿔은 뭉퉁하게 갈아주고는 있어요.
풀 경작지는 2~3만 평 정도 되는데요. 소 마릿수에 비하면 많다고 할 수 있어요. 열심히 퇴비 내고 땅도 갈고 씨를 뿌리면 땅이 그것보다 적게 있어도 돼요. 그런데 풀 키우는 것도 소 키우는 것처럼 하니 생산이 많이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많은 면적이 필요해요. 일반 지침보다 적은 횟수로 땅을 갈고, 그 자리에서 자연히 자란 풀을 거둬요. 어느 농학 교수가 미련한 짓이라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한번 해보고 싶어요. 물론 수입 건초를 주긴 해야하지만요. 소가 먹을 수 있는 만큼 내 능력으로 키울 수 있는 만큼은 내가 키워 먹이려고 해요.
평촌 목장의 방목장은 3천 평 정도인데, 사실 그 정도는 소에게 방목장이라 할 수 없어요. 마당 정도예요. 이 정도는 소가 하루 이틀만 나가면 초토화 돼요. 소 한 마리에게 3천 평이 필요하다고 하니까요. 유기축산 인증에도 면적 기준은 없어요. ‘방목장이 있어야 한다’이고, ‘가축이 방목장에 접근 가능해야 한다’ 정도예요. (여건상 이 정도밖에 유지할 수 없지만) 제게 방목이란 개념은 뭐냐면 그거죠. '네가 젖소로 태어났으면 죽기 전에 한 번쯤 풀을 뜯어먹어봐라.' 그러지 못하는 젖소가 대부분이니까요. 초식동물로 태어났으니 진짜 풀 한번 먹어봐라. 그 정도 복지로서 방목장을 생각합니다.
축사 바닥에는 톱밥을 깔짚으로 깔아요. 만약 톱밥이 충분하지 않으면 분뇨로 진창이 돼요. 바닥이 질척이면 젖소 젖꼭지와 발에 병이 생겨요. 바닥에서 나오는 가스 때문에 폐병도 생기고요. 뽀송뽀송한 깔짚은 제가 해줄 수 있는 최소한의 복지라고 생각해요. (유기 축산 인증 기준에는 충족하지만) 우리 목장이 소들에게 넓은 규모의 축사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넓지 않은 축사지만, 내가 싼 똥에 앉아서 몸에 똥이 묻는 일은 될 수 있으면 줄여주고 싶어요. 소는 짐승이니까 더우면 똥을 싸고 그 자리에 앉아요. 더우니까. 그러면 안 좋잖아요. 똥이 덕지덕지 붙어요. 한여름에는 어쩔 순 없지만 톱밥을 많이 깔고 로터리를 쳐줘요. 밤새 똥오줌을 쌌어도, 아침에 한번, 저녁에 한번 톱밥을 뒤집어 주면 소에게 직접 묻는 게 많이 줄어요. 분뇨가 톱밥이랑 섞이면 미생물 발효도 일어나고요. 요새 너무 가물어서 아직은 뽀송뽀송해요. 하지만 습도가 높아지면 진득진득해져요. 그럼 소들이 시원한 데를 찾아가요. 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은 분뇨가 많아져 질척이게 돼요. 그것까진 어쩔 수 없지만, 될 수 있으면 덜 질척거리게 노력해요. 톱밥과 똥을 매일 두 번 섞어주는 게 그런 이유에요. 그리고 손님들이 많이 오고 하니까 저 정도는 해줘야 될 것 같아요. 손님들이 보는데 소가 똥 속에서 허우적거리면 안 되잖아요(웃음).
젖소의 생산성을 최대한 올리는 건 농장주에게도 정말 서글픈 일이거든요. 매일 젖 짜는 일도 쉬운 일은 아닌데, 여기에 높은 생산성, 높은 테크닉을 유지하려면 사람이 훨씬 힘들어요. 나도 살아야지 싶은 생각이 들어요. 목장이 느슨하게 된다면 제 삶도 느슨해질 수 있다는 거죠. 자연스러운 목장을 추구하고 조금 덜 생산되는 것을 용인하고 이러면 좀 내 삶도 약간은 여유가 생길 것 같아요. 이건 역시 적은 규모로 생산하고 직접 가공하니까 가능한 것이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