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북 플랜B 09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호호동호 Jul 20. 2023

겨울나기_포장 들어갑니다.

월동

우리 집 벌통은 18밀리미터 두께의 나무로 만들어져 있다. 야생 꿀벌은 바위틈이나 나무 구멍에 집을 짓는다. 태초의 꿀벌은 열대지방에서 생겨났으며, 그때는 집을 바깥에다 지었다고 한다. 다 같이 비박을 한셈인데, 태초의 인류처럼 동굴을 찾아들어가면서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겨울을 견딜 수 있게 됐고, 열대 지역을 벗어나 생존이 가능해졌다. 당연 야생에서 구하게 되는 통나무집은 양봉 벌통과 다르게 훨씬 두껍다. 두꺼운 만큼 보온 능력이 단연 뛰어나다. 야생벌들은 출입구 구멍을 최소화해서 침입자와 빗방울은 물론 추위도 들어오지 못하게 한다. 물론 야생에서도 이런 이상적인 거주지를 구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자연 숲이 사라지고 있는 지금은 더더욱 말이다. 겨울철 양봉가들은 벌통을 따듯하게 포장해 준다. 포장은 내부 포장과 외부 포장이 있다.
 

내부를 먼저 포장한 후 외부 포장을 한다. 내부 포장은 벌통 속 벌집에 이불을 덮어주는 것이다. 내부 포장을 위해선 한 가지 준비가 필요하다. 벌집 수를 줄이는 것이다. 벌들이 빽빽해질 때까지 소비를 계속해서 뺀다. 벌들이 밀착해서 겨울을 나게 하기 위함이다. 봉구를 형성해야 하는 벌들이 퍼져 있으면 열 손실이 크다.
 

"월동 포장 전까지 소비를 사정없이 줄이라고."


초봉자에게 벌들의 아버지 가르침은 외계어처럼 들렸다. 소비를 줄이라니… 소비는 어떤 소비를 줄여야 하는지_비어있는 벌집, 꿀이 꽉 찬 벌집... 벌들의 아버지는 안전하게 겨울을 나기 위해선 벌이 꽉 차있는 벌집이 최소 세 장은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이 와중에 벌집과 벌집의 간격을 띄우라고 했던가. 평소 한 마리만 지나다닐 수 있는 틈을 넓게 해서 꿀벌이 이중삼중으로 겹쳐있으면 좋다고 했던가. 아주 세세한 차이 같지만 벌들에겐 큰 차이일 수 있으니 소심해졌다. 
 

생활공간을 줄였다면 이제 벌통의 빈 공간을 단열재로 채워 단열성을 높인다. 내부 벌집에 부직포 이불을 덮어준다. 이불과 벌집 사이에 나뭇가지를 넣어주어 벌들이 왕래할 복도를 만들어준다. 벌들이 벌집과 벌집사이를 서로 왕래할 수 있도록. 포장이 없는 아래로 다닐 수 있지만, 아래는 냉기가 있으니 따뜻한 공기가 있는 윗통로를 만들어준다. 그리고 비닐을 씌운다. 빈 공간에는 스티로폼 조각을 넣는다. 더 이상 들어갈 공간이 없으면 뚜껑을 덮는다. 채워준 신문지나 비닐, 스티로폼은 벌통속 두꺼운 벽 역할을 해준다. 벽은 외부 냉기가 침투하지 못하게, 벌들이 만든 열이 바깥으로 새어나가지 않게 한다. 환기구멍은? 겨울은 벌통 입구로 충분하다.


바깥과 내부 포장은 동시에 하지 않는다. 내부 포장을 먼저 한다. 밤기온이 낮을 때 한다. 아직 벌들이 낮에는 야외활동을 하기 때문이다. 낮기온도 영하로 떨어질 때 외부 보온(포장)을 한다. 이제 벌들도 외부활동을 중단한다. 외포장은 벌통 밖에 이불을 덮어주는 일이다. 벌통 전체를 비닐 가빠를 덮고 부직포를 덮는다. 빗물이나 눈물이 스며들지 않도록 함석을 덮어주면 좋다. 햇볕이 비치면 내부 온도가 너무 오를 수 있으므로 햇볕을 가리는 게 좋다. 내부 온도가 올라가면 벌들이 바깥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나는 내부 포장을 마친 벌통에 플라스틱 박스 한 겹을 덮어주었다. 그리고 가빠를 덮었다. 이걸로 된 걸까. 너무 습한 건 아닌가. 답답한 건 아닌가. 조마조마하다. 답답하지 않을까 걱정이다.

이전 08화 치명적 리듬, 따뜻한 겨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