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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플랜B 1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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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호동호 Jul 24. 2023

소한小寒_붕붕 소리 들려오면

월동 3편

말벌 군락은 일 년만 산다. 가을즈음 새로 태어난 여왕벌들은 결혼 비행 후, 작은 구멍에서 겨울잠을 잔다. 원래 있던 여왕과 일벌은 그해를 넘기지 않고 죽음을 맞이한다. 꿀벌은 집단 전체가 겨울잠을 자지 않는다. 벌 친척은 물론 곤충 대부분이 겨울잠을 잔다. 심지어 포유동물, 양서류도 겨울잠을 잔다. 조류는 먼 여행을 떠난다. 꿀벌은 진화 과정에서 겨울잠을 선택하지 않았다. 인간처럼 보일러를 개발했다. 


꿀벌은 추위를 어떻게 견딜까? 벌들에겐 보일러가 있다. 꿀벌들은 가슴 근육을 떨어 열을 낸다. 우리가 추울 때 몸을 떠는 것처럼 말이다. 전체 꿀벌이 동그랗게 모여 집단의 체온을 유지한다. 동그랗게 모이는 것을 봉구라고 한다. 봉구의 가운데가 가장 따뜻한 아랫목이라 할 수 있는데 온도가 30도를 넘는다. 이곳에 여왕벌이 있다. 다음 세대의 가능성을 지키기 위한 당연한 일이다. 봉구 내부에 있던 꿀벌은 당이 떨어지면 꿀을 먹기 위해 봉구 외곽으로 나간다. 봉구 외곽은 춥기 때문에 바깥에 있던 꿀벌은 이때를 기다리다 가운데로 비집고 들어온다. 우리 몸에 따뜻한 피가 돌듯 봉구도 순환한다. 겨울 동안 이 활동은 멈추지 않는다. 
 

라고 하는데, 우리 봉순이들이 죽지 않고 살아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양봉 기술을 제대로 배우기 위해 양봉 책도 잔뜩 샀다. 책을 읽은 만큼 꿀벌과 함께할 미래로 가슴이 부풀어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어느 책도 지금 벌통의 상황을 시원히 말해주지 않았다. 겨울 내내 뭉근한 불안에 시달렸다. 다리 뻗고 자지 못할 만큼의 불안은 아니었지만, 저온 화상을 입은 것처럼 잔잔한 불안이 떠나지 않았다.


지난겨울은 늦도록 따듯한 날이 이어졌다. 벌은 날이 따듯하다 싶으면 밖으로 나갔다. 그게 벌의 몸에 새겨진 본능. 하지만 오후가 되어 추워지면 그 자리에서 활동을 멈췄다. 제자리에 멈춰 따뜻해지길 기다렸다 집으로 돌아오는데, 일교차가 큰 이 즈음에는 그대로 죽음을 맞이했다. 집에 돌아가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는 꿀벌을 많이 마주쳤다. 따뜻한 겨울, 꿀벌은 이렇게 죽었다. 서로가 보일러인 꿀벌들에게 동료가 줄어든다는 것은 전체를 위험하게 했다. 벌통 한 통을 잃으면서 자신감이 급 쪼그라진 상태였다.


벌통을 열어보면 될 것 같지만, 추운 겨울에는 벌통을 열어서는 안 된다. 살짝 한번 열어보는 건 되겠지만, 그것 때문에 벌들이 죽으면... 겨울 포장을 너무 많이 덮은 건 아닐까? 벗겨줘야 할까? 지금 생각하면 온도계를 넣어보면 될 일이었다. 벌들이 살아있으면 외부기온과 다를 것이었다. 머리 쓸 생각은 못하고 벌통 주변에 나뒹구는 꿀벌시체를 보면서 내 마음엔 점점 불안이 쌓여갔다.


벌통 앞에 무릎 꿇고 앉아 기도를 올리던 날이었다. 그날! 벌통에서 붕붕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분명 벌들이 가슴 근육을 떠는소리였다. 벌이 살아있다는 말이었다. 살아있다!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그때껏 얹혔던 체증이 내려갔다. 하지만 끝까지 안심할 수는 없었다. 아직 한겨울이었다. 오늘 괜찮다고 내일도 괜찮은 건 아니었다. 지금은 괜찮다는 말일 뿐이었다. 그래도 지금 불씨가 꺼지지 않고 살아있다는 것이었다. 가슴이 벅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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