됐다! 꿀벌이 살아있는 것을 보니 얹힌 게 내려갔다. 어디선가 빵빠레가 울리고, 축포가 터졌다. 얼른 다시 포장을 덮고 벌통 뚜껑을 닫았다. 얘들아 미안! 봄벌 깨우는 법을 배워서 제대로 다시 올게!
봄벌 깨우기를 하면 꿀벌은 겨울 봉구를 해제하고, 육아를 시작한다. 꿀 생산이 주목적이 아닌 나는 아까시 꽃 피는 시기와 상관없이 봄벌 깨우는 시기를 최대한 늦추기로 했다. 늦춰서 좋은 일은 봄날의 춥고 덥고 일교차가 큰 날씨에 일희일비하지 않을 수 있어 노동력이 절감된다. 꿀벌이 육아를 하는 동안 육아 온도가 일정해야 하기 때문에 외부 포장을 벗겨주고 덮어주고를 반복해야 한다. 성체는 낮은 온도를 견딜 수 있지만 애벌레는 견디지 못한다. 추운 날씨에 일하는 것은 꿀벌의 면역력이 떨어지게 한다. 봄벌 깨우기를 늦춘 가장 큰 이유는 요즘 금사과 값의 원인 중 하나 봄철 한파 때문이다.
물론 무한정 늦출 수는 없다. 겨울벌의 수명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겨울벌이 첫 육아를 해줄 수 있는 20여 일의 시간을 계산해야 한다. 몇 번의 봄비가 내리고, 따뜻한 날이 이어졌다. 벌 작업을 시작하지 않아 막상 하는 일은 없지만 조바심과 불안감이 계속됐다. 3월 중순이었다. 기상 예보가 일주일 이상 10도 이상으로 나왔다.
봄벌을 깨우면서 하는 일 하나는 꿀벌들 몸에 응애 약을 치는 것이다. 이때가 진드기를 호미로 막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물론 가래도 써야 한다). 벼룩의 간을 빼먹지 말라 했지만, 응애는 꿀벌의 간즙을 빨아먹는다. 응애도 꿀벌 몸에 붙어 겨울을 지낸다. 응애(진드기)는 숙주인 꿀벌과 번성 주기가 비슷하다. 진드기는 꿀벌 애벌레 방에 들어가 번식을 한다. 번데기 기간 12일(일벌)과 15일(수벌) 동안 1마리가 1-3마리로 늘어난다. 진드기는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난다. 하지만 애벌레가 없으면 알을 낳을 수가 없다. 꿀벌은 겨울 동안 알을 낳지 않기 때문에 진드기도 겨울 직후가 가장 적은 숫자다. 봄이 되면 꿀벌도, 진드기도 알을 낳기 시작한다. 꿀벌이 알을 낳기 전에 방제를 한다.
유기산을 통한 응애 방제는 친환경 방제로 알려져 있다. 내가 쓰는 약은 비넨볼. 주요 성분은 '구연산'과 프로폴리스. 구연산은 이름 그대로 산(Acid)이다. 자연에는 레몬이나 시금치에 함유되어 있다. 미량이지만 산성 용액을 꿀벌 몸에 직접 살포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만큼 자극이 강하다. 곤충의 껍질, 키틴에서 칼슘을 녹인다. 그래서 한번 노출된 꿀벌에겐 다시 사용하지 않도록 하고, 애벌레가 없는 봄과 가을에만 약제 처리를 한다.
낮기온 10도 이상이면서 햇볕이 맑은 날 오후에만 벌통을 연다. 온도가 떨어지면 애벌레 건강에도 좋지 않고, 꿀벌이 다시 온도를 높이느라 기력을 많이 쓰기 때문이다. 봄철 벌은 특히 귀하게 모셔야 한다. 봄벌을 깨울 때는 벌의 상태를 보고 그에 맞게 조치를 취해준다. 벌의 수가 줄었으면 소비(벌집 판)를 빼준다. 봉구를 좁게 형성할 수 있도록. 먹이가 부족하면 먹이장(꿀이나 설탕물이 봉개 되어 있는 벌집)을 넣어준다. 먹이장은 따뜻한 방에서 잠시 보관했다 주도록 한다. 차가운 걸 먹으면 벌도 배탈이 난다. 소비 정리를 한 후에 진드기 약을 친다. 약은 주사기에 담아 벌집 사이, 벌의 등에 쏜다.
벌들의 아버지께 배운 대로 하려는데 배운 대로 꾸려져 있지 않다. 선생님 말씀을 꼼꼼히 듣고 다 이해했던 게 아니었던가. 하지만 우리 집은 상황이 다르다. 선생님이 가르쳐줄 땐 다 이해했는데, 시험지 앞에서 눈앞이 깜깜한 기분이다. 그래, 학교 다니던 시절에도 이랬지. 여왕벌이 어디 있는지부터 못 찾겠다. 여왕벌이 어디 있는지 알아야 소비를 넣고 뺄 때 다치지 않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여왕벌을 잃는 건 다 된 밥에 코 빠트리는 정도가 아니라, 아궁이가 쪼개지는 것과 같다. 벌들이 얼마 없는데도 뭉쳐있으니 여왕을 찾기가 어렵다. 머릿속 시곗바늘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이럴 땐 꼭 배가 아프고 화장실이 가고 싶은 것이다.
아직 알을 낳지 않았다. 두 개의 벌통 중 한쪽은 꿀이 거의 남지 않았다. 먹이를 많이 먹었으면 벌이 많이 살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다. 다른 벌통의 반 정도만 살아남았다. 다른 쪽 벌통은 먹이도 많고 살아남은 벌도 많다. 어떻게 된 걸까. 먹이가 부족해서 죽은 걸까? 추웠기 때문에 먹이를 더 많이 먹고, 먹는 중에 체온이 떨어져 죽은 걸까? 미리 준비한 따듯한 설탕물(물과 설탕 1:1 비율) 500ml를 담은 위생 봉지를 벌집 위에 놓아둔다. 화분떡(꽃가루 반죽) 반덩이를 같이 둔다. 마무리는 진드기 약 처리.
그리고 다시 포장을 한다. 겨울 포장보다 더 세심하고 두텁게 해 준다. 일교차가 큰 시기이기 때문이다. 신문지도 겹으로 포장하고 비닐도 꼼꼼히 덮는다. 겨울보다 보온에 더 신경을 쓰는 봉순이들은 이제 알을 낳고 애벌레를 키울 것이기 때문이다. 제 몸만 간수하면 되는 시절과 다르게 갓난 동생들을 챙겨야 하는 가녀장이 되었기 때문이다. 가녀장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