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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플랜B 1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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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호동호 Aug 12. 2023

봄벌 깨우기_가녀장 시대 개막

됐다!


꿀벌들이 살아있는 것을 확인하니 얹힌 게 내려갔다. (상상 속) 빵빠레가 울리고, 축포가 터졌다. 얼른 다시 포장을 덮고 벌통 뚜껑을 닫았다. 봄벌 깨우는 법을 배워서 제대로 다시 올게!


봄벌을 깨우면서 하는 일 하나는 꿀벌들 몸에 진드기 약을 치는 것이다. 지금이 진드기를 호미로 막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물론 나중에 가래도 써야 한다). 꿀벌의 간을 빼먹는 진드기 녀석들도 꿀벌 몸에 붙어 겨울을 지낸다. 응애(진드기)는 숙주인 꿀벌과 번성 주기가 비슷하다. 진드기는 꿀벌 애벌레 방에 들어가 번식을 한다. 애벌레는 번데기가 되기 직전 입구를 막는다. 진드기는 이 순간을 노린다. 꿀벌 몸에서 내려와 방으로 잠입한다. 번데기 기간 12일(일벌)과 15일(수벌) 동안 1마리가 1-3마리로 늘어난다. 진드기도 세대를 거듭할수록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난다. 하지만 애벌레가 없으면 알을 낳을 수가 없다. 꿀벌은 겨울 동안 알을 낳지 않기 때문에 진드기도 겨울 직후가 가장 적은 숫자다. 봄이 되면 꿀벌도, 진드기도 알을 낳기 시작한다. 꿀벌이 알을 낳기 전에 방제를 한다. 방제 전에 벌써 꿀벌 알이나 애벌레가 생겼으면? 아깝더라도 봉판을 없앤다. 


비넨볼. 꿀벌 진드기 방제를 위한 동물용의약품이다. 검색해 보면 약 성분이 '구연산'과 프로폴리스라고 나온다. 구연산은 이름 그대로 산(Acid)이다. 자연에는 레몬이나 시금치에 함유되어 있다. 산성 용액을 꿀벌 몸에 직접 살포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만큼 자극이 강하다. 곤충의 껍질, 키틴에서 칼슘을 녹인다. 그래서 한번 노출된 꿀벌에겐 다시 사용하지 않도록 하고, 애벌레가 없는 봄과 가을에만 약제 처리를 한다. 또 다른 산 처리 방법은 개미산을 통한 방제가 있다. 개미산 용액을 기체로 휘발시켜 진드기를 죽인다. 산성 물질을 통한 처리는 진드기 내성이 없다. 아무리 노출되어도 생명체가 산에 적응할 수 없으니까. 유기산을 통한 진드기 방제는 인체에 무해한 방제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산이 왜 진드기에게 영향을 미치는지는... 기다려보세요!)


낮기온 10도를 넘으면서 햇볕이 맑은 날 오후에만 벌통을 연다. 온도가 떨어지면 벌들이 다시 온도를 높여야 하는데. 그게 꿀벌의 기력을 많이 쓰기 때문이다. 지금의 벌은 정말 잘 모셔야 한다. 봄벌을 깨울 때는 벌의 상태를 보고 그에 맞게 조치를 취해준다. 벌의 수가 줄었으면 소비(벌집 판)를 빼준다. 봉구를 좁게 형성할 수 있도록. 먹이가 부족하면 먹이장(꿀이 들어있는 소비)을 넣어준다. 먹이장은 따뜻한 방에서 잠시 보관했다 주도록 한다. 차가운 걸 먹으면 벌도 배탈이 난다. 소비 정리를 한 후에 진드기 약을 친다. 비넨볼은 차가운 온도에서 고형화가 되기 때문에 따뜻한 물에 담가 둔다. 한 면에 주사기로 1ml씩 흘려준다. 흘림처리라고 한다. 용량이 표시된 주사기로 해주면 편하다.


벌들의 아버지께 배운 대로 하려는데 배운 대로 꾸려져 있지 않다. 선생님 말씀을 꼼꼼히 듣고 다 이해했던 게 아니었던가. 하지만 우리 집은 상황이 다르다. 선생님 벌통에선 여왕벌이 잘 보였는데, 시험지 앞에서 눈앞이 조금 깜깜한 기분이 들어. 그래, 학교 다니던 시절에도 이랬지. 여왕벌이 어디 있는지부터 못 찾겠다. 여왕벌이 어디 있는지 알아야 소비를 넣고 뺄 때 다치지 않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여왕벌을 잃는 건 다 된 밥에 코 빠트리는 정도가 아니라, 아궁이가 쪼개지는 것과 같다. VIP부터 챙겨야 한다. 벌들이 얼마 없는데도 뭉쳐있으니 여왕을 찾기가 의외로 어렵다. 시간이 촉박한 일에 장이 취약한 나는 시곗바늘 소리가 들리는 것 같으면서 배가 점점 아파오기 시작했다. 


아직 알을 낳지 않았다. 두 개의 벌통 중 한쪽은 꿀이 거의 남지 않았다. 먹이를 많이 먹었으면 벌이 많이 살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다. 다른 벌통의 반 정도만 살아남았다. 다른 쪽 벌통은 먹이도 많고 살아남은 벌도 많다. 어떻게 된 걸까. 먹이가 부족해서 죽은 걸까? 추웠기 때문에 먹이를 더 많이 먹고, 먹는 중에 체온이 떨어져 죽은 걸까? 미리 준비한 따듯한 설탕물(물과 설탕 1:1 비율) 500ml를 담은 위생 봉지를 벌집 위에 놓아둔다. 화분떡(꽃가루 반죽) 반덩이를 같이 둔다. 마무리는 진드기 약 처리.


그리고 다시 포장을 한다. 겨울 포장보다 더 세심하고 두텁게 해 준다. 일교차가 큰 시기이기 때문이다. 신문지도 겹으로 포장하고 비닐도 꼼꼼히 덮는다. 겨울보다 보온에 더 신경을 쓰는 이유는 봉순이들은 이제 알을 낳고 애벌레를 키울 것이기 때문이다. 제 몸만 간수하면 되는 시절과 다르게 갓난 동생들을 챙겨야 하는 가녀장이 되었기 때문이다. 가녀장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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