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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플랜B 1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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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호동호 Aug 15. 2023

벌통 뚜껑 열리던 날

밑도 끝도 없이 벌통 뚜껑을 연 건 아니다. 어젯밤 인터넷에서 여러 봉도사님들의 배움을 사사하였다. 봉도사님들은 내검을 쉽게 쉽게 했다. 동작이 빠르고 고민이 없었다.

벌통 뚜껑을 열고 면포를 벗겼다. 봉도사들이 하던 대로 내검칼을 이용해 벌집을 한 장 한 장 떨어트렸다. 나무로 만들어진 벌집들은 서로 단단하게 붙어있다. 한자어로는 봉교蜂膠라 불리는 꿀벌의 접착제. 바로 프로폴리스 때문이다. 벌통 안을 처음 보았을 때 끈적끈적하게 느끼게 했던 물질이다. 장갑에 묻고 칼에 묻는다.


집단생활을 하면 장점도 있지만 위험도 존재한다. 전염병에 취약해진다는 것이다. 인간이 위생학을 발전시키고, 지혜를 개발해 온 것처럼 꿀벌도 오랜 세월 전염병에 맞서는 방법을 개발했다. 프로폴리스는 지킨다는 뜻의 프로Pro와 도시를 뜻하는 폴리스Polis의 합성어다. 이름 그대로 꿀벌 도시를 지킨다. 꿀벌이 나무 새싹 같은 식물의 성장점에서 채취해 온 물질이다. 항생, 항균이 대표 기능이다. 집 내부에 코팅해서 박테리아 증식을 억제하고, 집 틈을 막기도 한다. 쥐 같은 큰 동물이 벌집에 침입했다가 죽었을 경우, 꺼내지 못하기 때문에 벌은 프로폴리스로 덮어 세균이 증식하지 못하도록 한다고 한다. 그 때문에 양봉이 발달했던 고대 이집트에선 미라를 만들 때 프로폴리스를 썼다고 한다.
 

벌집의 방에 프로폴리스를 덧 입히기 때문에 새롭게 만들어진 벌집은 연 노란색인데 오래 쓸수록 까매진다. 프로폴리스는 뜨거운 여름 날씨에 녹아 본드처럼 끈적끈적하게 늘어나는 게 보인다. 봉교를 알코올로 녹여서 추출한다. 


벌집은 한 장 한 장 떨어져 있다. 벌집을 추가하고 빼주기 쉽게 개발된 랑스트로스식이다. 이 벌집을 꿀벌은 프로폴리스로 붙여놓았다. 모든 틈을 프로폴리스로 막아두는 꿀벌의 습성 탓이다. 벌통 안 공간이 여유가 있으면 서로 떼어놓기가 쉽지만, 벌집이 많아질수록 여유공간도 줄어들고 서로 떼기가 쉽지 않아 진다. 봉교가 끈끈할수록 꿀벌이 건강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처음 꺼낸 벌집은 생각보다 무겁다. 꿀벌들은 진동에 민감하다. 다리에 진동을 수용하는 감각이 있어 깜깜한 벌통 속에서 꿀벌은 진동을 통해 소통한다. 벌집을 들어 올리는 순간 생긴 충격에 다들 짧게 '웨엥'거린다. 어떤 경고 같기도 하고, 짧은 헛기침 같기도 하다. 깜깜한 벌통에서 훤한 세상으로 벌집을 꺼내 들었다. 꿀벌들은 지금 상황은 신경 쓰지 않고 각자의 일을 본다. 거대한 괴생명체가 집을 통째로 뽑아 들어 나를 쳐다보고 있다면 나라면 입에 거품 정도는 물었을 텐데 벌들은 태연하다. 사생활 같은 것도 신경 쓰지 않는다. '도도도' 기어 다니며 나름의 역할을 수행한다. 


노트북 크기 정도 되는 판을 좁은 틈에서 흔들림 없이 빼내기가 쉽지 않다. 그냥 노트북을 꺼낸다고 볼 수도 있지만, 양쪽으로 수천 마리 꿀벌이 붙어있는 수천 발의 벌침 패트리어트 미사일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벌침 맞는 것도 무섭지만, 꿀벌이 다치게 하고 싶지 않다. 꿀벌은 약한 생물이었다. 들어 올리는 각도가 조금이라도 삐뚤어지면 어디선가 꿀벌 어린이 껍데기 부서지는 소리가 난다. 빠직. 소리와 함께 봉순이 한 마리가 벌통 밑으로 떨어진다.
 

진동을 최소한으로 하기 위해 벌집을 초속 1밀리미터로 움직인다. 봉교의 역할이 접착제이기도 하니, 끈끈이 프로폴리스가 벌집 움직임을 어렵게 했다. 인내심이 떨어져 가고 조금만 더 빠르게 하고 싶은 욕심이 든다. 진땀은 꼭 눈으로 들어갔다. 힘을 좀 더 주는 순간 힘의 임계점을 넘은 벌집이 벌컥 움직인다.


퍽.
 

벌집과 벌집이 부딪쳤다. 웨엥. 벌집 추돌 사고가 발생한 현장. 주변에 있던 시민들이 놀라 날아올랐다. 현장에서 일하던 죄 없는 일벌 여럿이 다쳤다. 구급대원은 바닥에 떨어진 사상자를 확인했다. 경찰이 출동해 현장에 있던 용의자를 색출했다. 당황한 용의자는 '아니, 그게 아니고요.'라는 말을 되풀이했다. 경찰 검문이 시작됐다. 용의자는 곁에 있던 훈연기를 들었다. 연기로 본인의 흔적을 지워보려는 셈이었다. '슉슉-' 공기 펌프질을 했다.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나 훈연기는 불이 꺼진 지 오래다. 훈연기는 힘없는 바람만 뱉었다.


슉슉-

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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