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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플랜B 1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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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호동호 Aug 15. 2023

벌통 뚜껑 열리던 날

당연한 말일테지만, 벌들의 아버지나 유튜브 봉도사들은 내검을 쉽게 쉽게 했다. 동작이 빠르고 고민이 없었다. 나는 벌통 뚜껑을 열면서 내 학창 시절이 생각났다. 자습서를 보며 수학 마스터가 되었다고 생각했던 내 모습. 시험지를 받은 그때처럼, 사실은 모르는 문제지만 나는 내가 알고 있는 공식을 총동원해 나름의 성의를 다해 보기로 했다. 우선 봉도사들이 하던 대로 내검칼을 이용해 벌집을 한 장 한 장 떨어트렸다. 이름까진 자신 있게 쓸 수 있다. 벌집들이 서로 단단하게 붙어있다. 꿀벌의 접착제, 봉교蜂膠, 바로 프로폴리스 탓이다.


벌들은 집 틈을 없애기 위해 프로폴리스를 붙인다. 프로폴리스는 꿀벌들이 집단생활을 안전하게 하기 위해 발명한 물질이다. Pro(지킨다)-Polis(도시). 이름 그대로 꿀벌 도시를 지킨다. 수많은 기능이 있는데 항생, 항균이 대표 기능이다. 나무 싹이나 수액에서 채취해 온 성분이다. 박테리아 증식을 억제하고, 내부 단열을 돕는다. 쥐 같은 큰 동물이 벌집에 침입했을 경우, 꿀벌은 봉독을 이용해 쥐와 싸워야 한다. 만약 죽었을 경우 꺼내지 못하기 때문에 벌들은 프로폴리스로 덮어 세균이 증식하지 못하도록 한다고 한다. 양봉이 발달했던 고대 이집트에선 미라를 만들 때 프로폴리스를 썼다고 한다.


또 벌들은 방마다 프로폴리스를 덧 입힌다. 새롭게 만들어진 벌집(순수 밀랍)은 연 노란색인데 오래 쓸수록 까매지는 이유다. 병에 취약한 어린 생명체를 위한 지혜다. 이런 봉교는 뜨거운 여름 날씨에 녹아 끈적끈적하게 늘어나는 게 보인다.


벌통에는 벌집이 최대 10장까지 들어간다. 벌집 한장은 20센티미터 높이에 40센티미터 정도다. 우리 집 벌통은 반 정도 차있다. 그만큼 남는 공간이 있는데, 내검을 할 땐 남은 공간에 벌집을 밀어가며 상태를 보게 된다. 벌들이 안전한 내검을 위해서는 여유 공간이 필요하다. 벌집 양쪽으로 꿀벌이 붙어있고, 꿀벌이 다치지 않게 들어 올리기 위해선 틈이 필요하다. 노트북 크기 정도 되는 판을 흔들림 없이 수직으로 들어 올리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벌집은 2차원 단면이 아닌 3차원 부피를 가지고 있고, 내게는 노트북 크기지만 작은 생명들에겐 아파트이기 때문이다. 벌집 앞뒤 간격은 벌릴 수 있다. 하지만 좌우 간격은 1센티미터 밖에 되지 않는다. 들어 올리는 각도가 조금이라도 삐뚤어지면 어디선가 꿀벌 어린이 껍데기가 부서지는 소리가 난다. 봉순이 한 마리가 벌통 밑으로 떨어진다. 미션임파서블 뺨치는 진땀이 난다. 톰 크루즈는 쫀쫀이 장갑이라도 꼈지, 나는 뭉툭한 고무장갑을 끼고 있다.


여유 공간을 만들기 위해 벌집을 초속 1밀리미터로 움직인다. 느리지만 꽤 힘이 든다. 봉교의 역할이 접착제이기도 하니, 끈끈이 프로폴리스가 벌집 움직임을 어렵게 했다. 인내심이 떨어져 가고 조금만 더 빠르게 하고 싶은 욕심이 든다. 힘을 좀 더 주는 순간 힘의 임계점을 넘은 벌집이 벌컥 움직인다.


퍽.


벌집 추돌 사고가 발생한 현장. 주변에 있던 시민들이 놀라 날아올랐다. 사상자가 발생하고, 구급대원은 벌통에 떨어진 사상자를 확인했다. 경찰이 출동해 현장에 있던 용의자를 색출했다. 당황한 용의자는 '아니, 그게 아니고요.'라는 말을 되풀이했다. 용의자를 맴돌며 경찰 검문이 시작됐다. 용의자는 곁에 있던 훈연기를 들었다. 연기로 흔적을 지워보려는 셈이었다. '슉슉-' 공기 펌프질을 했다. 저런.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나 훈연기는 불이 꺼진 지 오래다. 훈연기는 힘없는 바람만 뱉었다.


슉슉-


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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