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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플랜B 1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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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호동호 Aug 15. 2023

벌집은 생각보다 무겁다(엄살 zero)

계속되는 내부검사 

뭐든 하나라도 챙기면 성공한 기분이 든다. 초보자 내검에 있어 그 하나는 여왕벌 확인이다. 여왕벌이 있는지, 없는지는 다른 여지가 있을 수 없다. 월동에서 막 깨어난 지금처럼 숫자가 많지 않을 때는 더더욱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여왕벌의 산란력이 좋은지 나쁜지까지 판단은 더 경험이 쌓여야 한다. 여왕벌께 문안 인사를 드리는 것만으로 반은 성공이다. 절반이라고 했지만, 그 이외에 무엇을 해야 할지 잘 모른다고 해야 하는 게 솔직한 말이다. 비행기 점검을 처음 했을 때도 그랬다. 일단 관찰이다. 계속 보다 보면 평균을 알게 되고, 평균과 다른 점을 잡아낼 눈이 생긴다. 


처음 꺼낸 벌집은 생각보다 무겁다. 꿀벌들은 진동에 민감하다. 다리에 진동을 수용하는 감각이 있어 깜깜한 벌통 속에서 진동으로 소통을 한다. 벌집을 들어 올리는 순간 생긴 충격에 다들 짧게 '웨엥'거린다. 어떤 경고 같기도 하고, 헛기침 같기도 하다. 깜깜한 벌통에서 훤한 세상으로 벌집을 꺼내 들었다. 꿀벌들은 지금 상황은 신경 쓰지 않고 각자의 일을 본다. 거대한 괴생명체가 집을 통째로 뽑아 들어 나를 쳐다보고 있다면 나라면 입에 거품 정도는 물었을 텐데 벌들은 태연하다. 사생활 같은 것도 신경 쓰지 않는다. '도도도' 기어 다니며 나름의 역할을 계속 수행한다. 


구조물 수업을 들을 때 육각형의 허니콤(벌집) 구조를 가장 단단한 구조라고 배웠다. 평생, 진짜 벌집은 처음 보았다. 벌집은 물렁물렁했다. 벌집을 이루고 있는 벽(밀랍)은 얇은 양초 같았고, 잘못 만지면 우그러졌다. 이런 연약한 집에서 수천 마리가 산다니. 꿀벌 수천 마리가 매달려도 끄떡없도록 만들어다니. 이런 꿀벌의 지혜!  


감격은 나중으로... 하던 내검을 마저 하자. 이쪽 면에 여왕벌은 없다.


그렇다면 뒷면을 볼 차례다. 어느 방향으로 돌려 보든 상관은 없다. 옆으로 돌리는 것도 방법이지만 벌집을 두 손으로 들고 있기 때문에 어딘가 기댄 후 손을 옮겨 가며 돌리는 게 조금 번거롭다. 손의 위치를 바꾸는 동안 꿀벌이 손가락이 집으려는 자리에 들어올 위험도 있다. 바나나향(꿀벌이 위험에 빠지면 내뿜는 구조신호 향)을 맡는 수가 있다. 


들고 있는 그대로 뒤집어서 보는 게 빠르다. 하지만 꽃꿀이 조금 떨어질 수 있다. 벌집의 벌방들은 드럼세탁기처럼 하늘을 향해 기울어져 있다. 개미허리 같은 일벌들의 허리건강을 위해 노동부 지침에 따라 벌방을 하늘을 향해... 는 아니고. 방이 수평으로 만들어져 있으면 꽃꿀이 아래로 흘러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뒤집힌 상태로 얼른 살펴본 후 다시 처음대로 돌린다. 여긴 없다. 벌집을 다시 벌통에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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