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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플랜B 1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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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호동호 Aug 20. 2023

화란춘성_주체 못 할 향기가 우리를 부를 때

꿀벌의 춤

 번의 추위가 지나고 덥다 싶은 날이 며칠 이어졌다. 기온 변화는 하루 안에서도 컸다. 외투를 입고 나갔다가 외투를 벗고 돌아왔다. 저녁은 여전히 춥지만, 낮은 점차 따듯해졌다. 얼었던 땅이 녹고 다시 얼기를 반복했다. 땅은 부풀어 올랐고, 깊게 숨을 들이셨다. 봄볕에 땅속 냉기가 흘러나왔고 밟으면 물이 스며 나왔다. 아지랑이가 피기도 했고 바람이 강하게 불었다. 널어놓은 빨래들이 어디론가 사라졌다.


아까시가 피었다. 포도송이처럼 주렁주렁 꽃이 달린 꽃송이가 나무 가득 피었다. 한송이 두 송이 눈치를 보더니 일제히 피어났다. 아까시 향은 대단했다. 나 같이 무딘 사람도 가득하게 맡을 향기였다. 아까시 숲 언덕 곁에 산다는 것은 언덕이 해를 가리고, 텃밭을 그늘지게 한다는 단점을 상쇄하고도 남을 행운이었다. 텃밭엔 아직 일이 별로 없음에도 향기는 나를 밭으로 이끌었다. 밭에 있으면 꿀을 따는 벌들의 날개 소리로 숲이 울렸다.


사실 아까시보다 먼저 피는 꽃은 많았다. 하천변 벚나무, 집집 마당 매화, 발 밑 이름 모를 여러 꽃들. 봄까치꽃, 제비꽃, 냉이꽃 땅을 기어가며 피는 식물들은 봄을 먼저 시작했다. 작은 꽃들이 별처럼 빛났다. 그래도 아까시에 비할바는 아니었다.


눈에 띄게 꿀이 늘어나는 게 보였다. 맑은 꿀이 벌집에서 반짝반짝 빛을 냈다. 평소 밀랍향과 다른 꿀향이 났다. 진-사회성 곤충인 꿀벌은 각기 역할이 나뉘어 있다. 벌통 입구에는 바깥에서 채취해 오는 꿀을 건네받는 벌이 있다. 하역벌은 하역장에 도착한 화물을 각 구역에서 기다리는 일벌에게 배송한다. 꽃꿀은 아직은 액체에 가깝다. 꽃꿀이 꿀이 되기 위해선 노동이 필요하다. 꿀벌은 꽃꿀을 삼키고 뱉기를 반복한다. 수분을 줄이고 그 과정에서 부패를 방지하는 꿀벌의 효소를 섞기 위해서다. 날갯짓으로 바람을 일으켜 수분을 날려 보낸다. 당도를 높여 보관기간을 늘리고, 보관 공간을 효율적으로 쓴다. 그리고 밀랍으로 뚜껑을 덮는다.


꿀벌은 같은 벌방을 때에 따라 용도를 바꾼다. 육아방으로도 쓰고, 꿀 저장고로도 쓴다. 아까시가 피는 시기에 꿀은 바깥에서 계속 들어오고, 내부로는 새로운 일꾼을 키워야 하는 두 과제가 시작된다. 양봉가들은 이 시기에 벌집을 추가해 새로운 공간을 마련해 준다. 너무 많이 늘려줘도 안된다. 벌방 청소가 꼼꼼히 되지 않아 병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지금은 대목이고, 나는 벌집을 추가해주어야 한다. 하지만 이제 갓 시작한 내게 여분의 벌집이 있을 리는 없었다. 벌집이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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