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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플랜B 1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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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호동호 Aug 14. 2023

꿀벌과 대화를 시도해 보았습니다_첫내검

아임 유어 파더

벌통 내부를 살피는 것을 내검內檢이라 한다. 내검은 봉순이들 상태를 확인하고 필요한 조치를 취해준다. 병의 예후를 살피고, 여왕이 알을 잘 낳고 있는지 확인한다. 추운 날씨에는 내검을 자제하고, 그 외의 계절에는 일주일에 한 번 혹은 두 번 한다. 그러고 보니 군대 있을 적에도 매일 내검을 했다. 그땐 비행기 점검을 했다. KA-1이라는 국산 비행기였다. 비행기는 비행을 하기 전과 후에 점검을 했고, 정해진 시기마다 교체할 부품이 있었다. 복잡한 기계와 움직이는 생물의 점검은 다르면서도 비슷했다. 처음은 언제나 떨렸다.


벌통 뚜껑을 열면, 사춘기 감성 봉순이들이 냅다 달려들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다. 소비(벌집)를 꺼내도 봉순이들은 조용하다. 본인들 일에 열중한다. 역시 봉순이들도 내  사랑을 알아주는 거야(러브 앤 피스!). 그럴 리 없다. 꿀벌들도 이 정도까지는 봐줄 수 있다는 것이다. 언젠가 교만해진 나는 맨손으로 벌통을 열었고, 벌집을 잡는다는 것이 봉순이를 집으며 쏘였다. 어쨌든 무조건 방충복은 입어야 한다. 위험을 감지한 꿀벌은 위험을 알리는 페로몬을 뿌리고 이 신호는 자매벌들을 몰려들게 한다. 수십 마리(정확히 말하면 벌침)가 붕붕 거리는데 침착함을 유지할 사람이 몇이 있겠는가. 꿀벌의 위험 페로몬 냄새가 바나나 향과 비슷하다는데, 다행인지 아직까진 그 열대과일 향은 맡아보지 못했다. 


비행기 점검에는 등(light)이 필요하다. 점검등을 통해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구석구석 볼 수 있도록 한다. 벌통 점검에는 불이 필요하다. 연기를 만들어야 한다. 살아있는 생물을 살펴볼 때, 게다가 나를 공격할 수 있다면 예방을 위한 도구가 필요하다. 바로 훈연기다. 훈연기는 손 펌프질로 공기를 넣어 재료를 태움과 동시에 연기가 한 방향으로 나가도록 만들어진 도구다. 연통에 훈연재를 넣고 불을 붙인다. 훈연재로는 보통 말린 쑥을 쓴다. 천천히 타는 쑥을 최고로 치는데, 쑥은 어디나 자라는 덕에 봄, 여름 언제든 베어 두며 쓴다. 검불이나, 나무조각, 종이 박스를 넣을 수도 있다. 양봉가를 양봉가답게 보여주는 도구라는 점에서 훈연기가 마음에 들었다. 자욱하고 짙게 깔리는 연기. 드디어 훈연기를 써보다니. 하지만 생각보다 불 붙이는 데는 노하우가 필요했다. 훈연기는 초보자 티를 나게 하는 도구이기도 했다. 불이 곧잘 꺼졌다.


벌통 뚜껑을 열고 벌집을 덮고 있는 면포를 걷어 연기를 뿜는다. 부드럽게 펌프질을 한다 쑥쑥-. 연기 냄새를 맡은 꿀벌은 '웨엥-' 놀라며 벌집 안으로 내려간다. 벌집 사이로도 연기를 뿜어준 후 잠시 기다린다. 연기는 꿀벌을 온순하게 만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이유는 벌들이 태곳적부터 다듬어온 유전자에 있다. 꿀벌이 살았던 나무구멍은 주로 숲에 있었다. 꿀벌이 숲에서 맞닥뜨릴 중대한 위협은 두 가지였다. 곰이나 오소리, 말벌 같은 침략자로부터의 습격을 당했을 때, 숲에 불이 났을 때다. 침략자에는 맞서 싸워왔고, 연기가 피어오르면 꿀벌들은 피난 준비를 했다. 하던 일을 멈추고 방으로 달려가 짐을 챙겼다. 꿀이었다. 어디서든, 어떤 상황에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자원. 벌들은 뱃속에 있는 밀낭이라는 꿀주머니에 꿀을 채웠다. 배가 부르면 꿀벌들은 우리가 춘곤증을 느끼듯 늘어졌고, 공격 의지가 줄어들었다. 


이 자연선택은 생존에 유리한 결과가 되었다. 식량은 정말 중요한 재산이다. 귀한 재산을 가득 들고 있는 꿀벌 한 마리 한 마리가 소중하다. 그런데 이 놈이 성질 머리가 모나서 부모님의 원수를 만났다고 침을 쏘고 죽기라도 하면 낭패다. 춘곤증이 꿀벌들을 살려왔고, 양봉가들은 그 점을 노린다. 따지고 보면 연기로 꿀벌들이 온순해진다기보다는 비상상황을 재현하는 것이다. 내검이 끝내고 벌통이 정상 상태로 돌아오기까지 수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그래서 훈연기를 쓰는 것은 꿀벌들에게 민방위 훈련을 시키는 것 같아, 8년 차 예비군으로써 조금 미안하다. 하지만 꿀벌들이 방마다 고개를 집어넣고 엉덩이를 까딱거리며 꿀을 먹는 모습에는 어떤 천진난만함을 느낀다.


이제 본격 내검에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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