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하고 호쾌한 여자축구'를 읽고
수많은 매체에서 건강을 말하지만, 사실 우린 이미 답을 알고 있다. 소파에 앉아 건강 방송을 볼 시간에 일어나 조금이라도 걷는 것이 건강해지는 방법이라는 것을. 하지만 우린 역시 알고 있다. 건강할 때 운동을 지속하기란 쉽지 않다는 것을. 혼자서는 더 어렵다. 야심 차게 헬스장 회원권 세 달치를 끊어도 출석은 겨우 세네 번이다.
지루함을 이겨내는 비결은 함께 하는 것이다. 밀어주고 당겨주고, 같이 달리면 왠지 해낼 수가 있다. 공동의 목표까지 생기면 재미까지 더해진다. 운동장 위에 공 하나 굴러가면 우리는 상상 이상으로 달리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축구의 마법이다.
책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축구>는 축구 초보자인 저자가 여자 축구팀과 그 세계에 입문하는 이야기다. 성인이 되어 우연찮게, 썩 탐탁지 않은 마음으로, 룰도 제대로 모른 채 축구를 시작한 여자들이 있다. 그들은 숨이 턱에 찰 때까지 넓은 피치 위를 뛰어다니고, 공 다루는 섬세한 기술들을 하나둘씩 익혀가고, 팀원들끼리 호흡을 맞춰 골대를 향해 공을 착착 몰고 가는 재미에 푹 빠지며 ‘아, 사실 나는 운동을 좋아하는구나’를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축구는 ‘남자들 운동’이라는 깊고 오랜 오해 하나가 풀렸을 뿐이다. 하지만 그녀들에게 축구를 시작한 이후의 시간들은 전과 다른 시간이 되었다.
전문 선수들의 이야기가 아닌 일반인들의 축구 이야기가 재밌어봤자 얼마나 재밌겠어? 남자 축구가 아닌 여자 축구라는 게 다를 뿐인데 말이다. 그렇지만 책은 여느 드라마 못지않은, 어쩌면 월드컵 이상으로 재밌다. 열심히 축구한다고, 축구가 밥 먹여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축구가 축구 밖 일상에 활력을 떠먹여 줄 수는 있다. 여름 땡볕에도 제 발로 운동장으로 나가는 그녀들의 마음이 이해가 간다. ‘여자가 축구를?’ 이 경계를 넘어선 그녀들의 이야기는 정말 재미있다.
이 책을 읽고 많은 여자 축구팀이 만들어졌다고 들었다. 책이 유행을 만든 것까지는 아니지만, 땅속에서 움트고 있던 기운을 흔들어 깨운 모양이다. 그런 팀, 홍동면에도 있다. 책을 읽은 한 주민이 마을 게시판에 모집 공고를 낸 것이 그만, 여자축구팀 반반 FC 창단의 발단이 됐다.
남자들의 전유물이라 여겨졌던 축구다. 남자들은 ‘겨우 축구 가지고 …’라고 생각할 수 있다. 반반 축구팀이 생기고 난 2년을 보니, 여자 축구는 ’여자도 축구한다.’ 정도를 넘는 의미가 있는 것 같다.
반반은 홍동 내 학교 축구팀들과 꾸준히 경기를 해왔다. 초등학교 팀에는 지고, 또 졌다. 고등학교 여자 축구부와는 주거니 받거니 하며 균형을 이룬다. 지난주에는 청양군수배 풋살대회에 나가 첫 대회를 치렀다. 8개 팀이 참가하였다는데, 8강 진출이라는 성과를 이루었다. 현장에 같이 갔던 이의 증언에 따르면 가장 많은 응원단이 함께한 팀이었다고 한다.
축구로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지만, 반반은 사실 엄청난 상을 받은 이력이 있다. 지난 1월, 홍성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에서 개최한 ‘제1회 우리마을건강대회’에서 ‘우리마을 건강대상’을 받은 것이다. ‘건강으로 겨뤄보자’가 대회 슬로건이었다. 동네에서 날고기는 11개 건강모임이 나왔다. 반반은 신생팀이었고 선수 십여 명의 작은 팀이었지만, 선수 이상의 지원단이 함께 하고 있었다. 감독, 팀닥터, 매니저, 가족 돌보미, 코치, 전술분석관 등. 그만큼 이웃들의 지지와 사랑을 받는 팀이었다. 그 결과, 자전거, 요가, 태극권, 뜸 모임 등을 제치고 당당히 대상을 받았다.
축구에는 단합심과 소속감이 함께한다. 몸뿐 아니라 정신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 생각해 보면, 공동체 건강에도 운동이 필요하다. 공동체는 어느 날 툭 생기는 것이 아니라, 구성원(당사자)들이 꾸준히 발견하고 가꿔줘야 한다. 운동이 매일 진행형이어야 하듯, 공동체 건강도 같은 원리인 것 같다. 혼자서는 어렵다. 매번 실패하고, 좌절한다. 오늘도 포기하고 싶다. 나이가 들면서 근육이 줄어들듯 지금 시대에 개인도 점점 작아지는 듯하다. 마주함이 줄어들고 단절되고 분리된다. 스마트폰 속 세상이 가장 안전한 세상이 되었다. 한계를 넘을 때 근육이 커지듯, 우리도 각자의 경계를 넘을 때 공동체력을 키울 수 있는 것 같다. 그 힘으로 우리는 이곳을 고향으로 만든다.
소외와 외로움의 시대에 맞서 우아하고 호쾌한 ‘운동’이 우리에겐 필요하다. 우리마을건강대회는 마을에 주민들이 스스로 만들고 운영하는 건강 모임들 간의 교류회다. 유튜브에 있는 지난 ‘우리마을건강대회 스케치’ 영상으로 그날의 분위기를 함께 느껴보시면 좋겠다. 그리고 12월 5일(화) 저녁 7시 동네마실방뜰에서 열릴 제2회 우리마을건강대회에 초대하고 싶다.
“저기요, 저도 축구를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해요?”
좌중이 일순간 조용해졌다. 하지만 축구인들이 누구인가. 갑자기 끼얹어지는 찬물을 기꺼이 맞는, 심지어 그걸 좋아하는 사람들 아닌가. 비 오는 날에는 비를 기꺼이 맞으며 축구하는 사람들인 것이다.
“그럼, 우리 팀에 합류하실래요? 시간 맞으면 그렇게 해요. 저희는 대환영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