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라비

세라비는 프랑스어로 '그것이 인생이다' '인생이 다 그렇지'라는 뜻

by 유연구지

매일 전화를 드린 지 보름이 훌쩍 넘어갑니다.

진작 그럴 걸, 아니 이제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수화기 너머 전화 신호음이 끊기자마자

내가 대뜸

사랑하는 우리 엄마~~~ 하면

엄마는 목소리 한 톤 높이시고

오~~~~냐 하시거나 사랑하는 우리 딸~ 하십니다.


마치 암호 같습니다.


우리 엄마가 알츠하이머라고 합니다.

믿기지도 않고 믿고 싶지도 않습니다.


혼잣말도 자주 하셨으나 나이 먹으면 다 그런 것인 줄 알았습니다.

밤에 사람들이 방에 들어온다고 하셔서 꿈꾸셨나 보다 했습니다.


물건 이름도 '그거'로 퉁치거나, 친척들 이름과 관계를 뒤죽박죽 말씀하셔도

신기하게 나는 다 알아들을 수 있었기 때문에 크게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엄마는 한 집에 있는 쉰이 갓 된 막내 남동생이랑 매일 부딪친다고 속상하다고

전화드릴 때마다 하소연 하셨는데,

그 이유가 동생의 잔소리 그리고 동생이 말마다 엄마에게 치매 치매하는 소리가 듣기 싫다 하셨습니다.


화가 났습니다.

평생직장도 없이 엄마 덕 혼자 다 보고 살았으면서 엄마를 힘들게 하다니.

막냇동생은 '내가 엄마를 모시고 산다' '돌아가신 아버지도 내가 다 했다'라고 아주 노래합니다.

선친을 병환 중 요양병원에 모셨는데 그때 한 번도 들여다보지 않았으면서 말입니다.


그런데 곰곰히 다시 생각해 보니

막내도 엄마 곁에서 사랑하는 엄마의 예전같지 않고 변화하는 모습을 바라봐야하는 이 상황이

답답하고, 두렵고, 부정하고 싶고, 안타깝고 그럴 것 같습니다.


동생과 전화했습니다.

엄마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동생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건강한지, 잘 먹는지, 내가 아는 동생 친구들은 잘 있는지, 엄마 때문에 얼마나 힘든지,

그래서 미안하고 고맙다라고 통화는 끝난 것 같습니다.


치매 관련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 왔습니다.

지금은 가슴 끝이 아리고 시리지만 "세라비".

"세라비"는 프랑스어로 '그것이 인생이다' '인생이 다 그렇지'라는 뜻이라 합니다.


치매 관련 책에서 보니 어떤 일에 전전긍긍할 때

기분이 좋아지는 말을 하나 정해서 그것을 마법의 주문처럼 되새기며

마음 속의 먹구름을 걷어 내라고 합니다.


제가 선택한 말은 "세라비"입니다.

치매는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인생의 문제이니까요.

인간이면 누구나 피해 갈 수 없는 노화와 그중 하나인 치매로 억울해하고 힘들어 할 것이 아니라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함께 잘 살아가야 할 부분이니까요.


열심히 치매공부해서 엄마와 좋은 추억 많이 남기고 싶습니다.


'치매 걸리신 우리 엄마 이제 다 끝난 건가, 진작에 잘 할걸'

어제 일도 기억 못하시는 것은 물론 조금 전 대화도 기억 못하시는 엄마를 위하여

더 이상 할 것이 없겠다 후회 가득한 내 마음에


"말을 걸라ㅡ치매는 고독병. 가족과 함께 살아도 따돌림 당하거나, 식사 따로 하거나, 혼자서 TV 보는 시간이 많은 노인은 치매 걸리기 쉽다. 부모와 자주 대화를 나누고 따로 산다면 전화를 걸자."라고

책 <여자가 치매 안 걸리고 100세까지 사는 습관/ 시라사와 다쿠지/태웅출판사>이 그 시작점을 알려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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