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행복해졌다.
영주권 (ILR)
Indefinite Leave to Remain
막상 영국에 와보니, 이민자라면 누구라고 할 것 없이 첫 번째 목표가 '영주권'을 받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과연 영주권이 무엇이기에 사람들이 이렇게도 중요하게 여기는지, 게다가 무슨 사연들은 그렇게 많은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누구는 비자 기간이 1주일 모자라서 한국 갔다더라", "누구는 영주권이 있어도 배우자 비자가 안 돼서 1년 동안 떨어져 살았다더라.", " 또 누구는..." 등등
영주권 (Indefinite Leave to Remain)은 영국에서 무기한으로 지내는 것이 합법적으로 보장되는 권리이다. 나는 이 권리가 보장된다는 것이 우리 가족의 영국 생활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 지를 직접 경험하였다. 오늘은 우리 가족의 경험을 근거로 영주권을 받은 후 변화된 것들 중, 몇 가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한다.
첫째, 우리는 평안함을 얻었다.
비자 문제가 있는 동안에 나와 남편은 육체적으로도 피곤했지만, 마음고생이 특히 심했다. 불안하기만 한 미래를 안고 산다는 것은 참 힘든 일이다. 그러다 보니 나는 남편이 핸드폰을 유심히 보고 있는 모습만 봐도 "또 무슨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고, 남편이 이메일을 확인하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또 뭐 왔어?"하고 묻는 습관이 생겼다. 영국은 공공 기관에서 오는 편지가 주로 갈색 재생 봉투로 오기 때문에 이민국에서 오는 편지도 그렇게 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꼭 이민국 편지가 아니더라도 주로 세금, 과태료 부과 등의 반갑지 않은 소식을 전하는 편지가 대부분이어서 어쩌다 갈색 봉투의 편지를 받는 날은 열어보기도 싫었다. 그렇게 작은 일에도 편치 않던 마음이 영주권을 받은 후에는 편안해지고, 불안감도 줄었으며, 남편의 행동에도 예민해지지 않게 되었다. 남편도 영주권을 받고 나니 불안했던 마음이 사라져서 좋다고 했다.
둘째, 새로운 기회를 찾을 수 있는 자유를 가졌다.
영주권이 있으니 남편은 더 이상 '스폰서십을 제공받을 수 있는 회사'라는 제한 없이 직장을 구할 수 있었다. K의 동의하에 남편은 본인의 커리어에 맞는 새직장을 구하기 시작하였다. 남편은 다양한 기회들을 찾았고, 조건이 좋은 회사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었다. 운이 좋게도 새롭게 입사한 영국 회사는 급여도 만족스러웠고, 아이들의 교육 관련비용도 지원해 주었으며, 일 년에 법정 휴가 28일 외에도 12일의 휴가가 추가되어, 년간 40일의 휴가를 사용할 수 있었다. 우리는 휴가 기간을 이용해 단기로는 유럽 여행을 했고, 한국으로 4주간의 장기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물론, 나도 더 이상 무리해서 일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아, 얼마나 기다려왔던 순간이었던가?
셋째, 영국에 정착한다는 확신이 생겼다.
처음 이민을 올 때부터 나와 남편은 영국에서 장기간 살 계획을 하였고, 그래서 용감하게 한국에 남겨두는 것 없이 모든 것을 정리했다. 그러나 영국에서 생각하지 못한 우여곡절을 겪게 되니 이곳에 정착해서 산다는 것이 매우 어렵고 불확실하게 느껴지는 날이 많아졌다.
하지만 영주권을 받은 후에는 그 불확실함이 확신으로 바뀌었다. 더불어 혹시라도 우리가 이민 생활을 실패하고 돌아오면 함께 지낼 생각을 하고 계시던 한국의 부모님에게는 안도감을 드렸다. 부모님이 말씀하셨다. "이제야 마음이 놓이는구나"라고...
가끔씩 영국 사람들이 우리에게 묻는다.
"Do you like living here?”
(영국에 사는 게 좋니?)
"Are you going to continue to live in the UK?”(영국에 계속 살거니?)
예전에 나는
“I hope I can continue to live in the UK. “
(영국에 계속 살 수 있었으면 좋겠어)라고 답했다.
요즘 나는
“I’ve chosen to live in the UK.”
(난 영국에서 살기로 했어)라고 당당히 말하고 있다.
넷째, 복지혜택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이 되었다.
영국의 복지 혜택은 정말 다양하고,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제도가 잘 갖춰진 나라이다. 영주권을 받기 전에도 NHS (National Health Service)에 의해 아이들의 의료비와 치과 치료비는 무료였고, 정기적인 시력검사로 안경까지 맞춰주었다. 성인들도 외래 진료는 무료이고 약값으로 일정 금액만 부담하였다. 아들이 학교에서 팔이 부러져서 응급 수술을 받은 후 퇴원할 때도 의사가 집에 가라고 하면 그냥 짐을 챙겨서 집에 가면 됐다. 한국에서 비용이 비싸다는 치아교정도 두 아이 모두 2년 동안 무료로 받았다.
영주권을 받게 되자, 아이가 대학을 가는 18살까지 매달 Child Benefit (양육수당)이 입금되었다. 또한 부모가 영주권자이면 자녀가 대학교에 입학할 때 내국인 학비가 적용되며, 학비와 생활비는 부모의 경제 상태에 따라 차등적으로 Student Loan (학자금 대출)을 지원받을 수 있다. Student Loan은 학비와 생활비를 영국 정부가 빌려주는 형태로, 대출 금을 상환하는 것도 일정 연봉(약 4,000만 원) 이상이 되는 경우에만 장기간(최대 30년)에 걸쳐 상환하면 된다. 만약에 은퇴하는 65세가 될 때까지 일정 소득이 없어 대출금을 상환하지 못하더라도 대출한 개인에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영국에는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인해 대학 진학을 포기하는 경우는 없다.
<< 여기서 잠깐 >>
2022년 현재, 영국의 내국인 학비는 9,250파운드(한화 1,480만 원)로 모든 학교와 학과가 동일하며, 외국인 학생의 경우에는 학교와 학과에 따라 다른데 3만 파운드에서 6만 파운드(한화 4,800만 원~ 한화 9,600만 원) 정도이다. 생활비도 부모의 경제 상태에 따라 3,500파운드(한화 560만 원)부터 13,000파운드(한화 2,000만 원)를 Student Loan으로 지원받을 수 있다 (1파운드 = 한화 1,600원)
그 밖에 아이를 혼자 키우는 싱글맘이나 장애인 또는 저소득층 같이 특수한 상황에 처한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복지 혜택도 다양하다. 널싱홈에서 함께 일했던 20살의 싱글맘인 케이트는 일주일에 16시간만 일하면 정부에서 렌트비와 생활비를 지원해 준다고 했다. 중증지체 장애가 있는 13살 에릭의 가족은 장애인용 차량 구입과 집안 전체에 에릭이 쉽게 이동할 수 있도록 특수 이동장치를 설치하는 것을 정부로부터 지원받았다. 그뿐만이 아니라 밤에는 부모가 쉴 수 있도록 에릭을 돌보는 간병인이 파견되었고, 가족의 생활비도 지원되었다.
과거에는 자녀가 많은 가정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으로 5명 이상의 다자녀를 둔 부모는 일을 하지 않고도 큰집에 고급차를 타고 다닐 정도의 편안한 생활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악용되는 사례들이 많아져서 언제부턴가는 정부 지원금의 최대한도가 정해졌고, 부모 중 한 명이라도 일정 시간 근로를 해야만 혜택을 주는 형태로 바뀌었다. 이 밖에도 영국에는 여러 사회 복지제도가 마련되어 있는데, 영주권자 이상이 되어야 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영주권으로 얻은 안정감, 새로운 기회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로움, 영국 정착에 대한 확신과 다양한 복지혜택들은 우리 가족의 삶을 변화시키기에 충분하였다. 남편은 워라밸 (Work and Life Balance)이 가능한 직장 생활에 만족하고 있고, 딸아이는 그렇게 가고 싶던 ICL 의대생이 되어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다. 스포츠를 좋아하던 아들은 첫 입시시험인 GCSE에서 좋은 결과를 얻고자 노력 중이며, 나는 주 3일은 일을 하고, 나머지 날들은 내가 좋아하는 여가 생활을 하면서 지내는데, 특히 요즘에는 글을 쓰면서 지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우리의 삶은 여유로워지고, 행복해졌다.
우리는 각자의 일터와 학교에서 분주히 지내지만, 가족이 함께 하는 시간도 많다. 우리는 거의 매일 아침과 저녁 식사를 함께 한다. 매달 두 번째 토요일에는 온 가족이 교회 바자회에 참여하여 봉사하고 있고, 매달 세 번째 금요일에는 가족 같이 지내는 영국 친구들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한다. 그들을 우리 집으로 초대할 때는 주로 한식을 준비하는데, 모두들 너무 좋아한다. 여행은 우리 가족이 제일 좋아하는 활동으로, 비행기 티켓과 숙소를 예약하고 기다리는 시간은 항상 우리를 설레게 한다. 2023년 첫 여행지는 로마(Rome)로 정하고는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13년 전에 워킹맘의 고된 생활이 아닌 커피 향이 나는 여유로운 삶을 기대하며 영국으로 이민 왔지만, 처음부터 그런 생활이 가능하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민자로서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할 어려움들을 견뎌냈고, 넘어져도 '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다시 일어서서 용기 있게 앞으로 한걸음 더 걸었다. 정말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는 캔디처럼 굳세게 살았던 것 같다.
그 결과, 예전에 상상하며 기대했던 그런 삶이 어느 날 선물처럼 우리에게 찾아왔다. 힘들다고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버텨낸 우리 가족이 정말 자랑스럽다.
당신이 상상하며 기대했던 그것이
선물같이 주어지는 삶,
그것이 바로 이민의 매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