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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로 Mar 13. 2017

아이를 보면 마음이 찡해진다

[삐딱한 엄마 일기 프롤로그]

어느 화창한 날이었다.


드물게 화창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기분이 좋은 그런 날 말이다. 나는 돌이 좀 안된 아들을 유모차에 태우고 길을 걷고 있었다. 햇살은 따뜻하고 공기도 맑고, 화룡점정으로 유모차 안에서 아이는 잠들어 있었다. '저절로 콧노래가 흘러나온다' 이런 소설 속의 문구가 어울리는 날이었다. 그래서인지 나도 모르게 노래를 부르고 있었나 보다.


"노는 게 제일 좋아 친구들 모여라~ 언제나 즐거워 개구쟁이 뽀로로" 정말 크게, 신나게, 아마도 엉덩이도 같이 흔들었을 정도로 정신없이 불렀다. 정신을 차려보니 아뿔싸 뽀로로 노래였다. 강남역 4번 출구 앞에서 구두를 신고 걸어다가 크게 넘어진 그 기분. 얼굴이 화끈거려 주변을 둘러보니, 옆을 지나가던 몇몇 사람이 '저 아줌마 이상하다'라고 쳐다보며 지나가는 '것만' 같았다. 즐거울 때 나오는 노래가 뽀로로라니. 그렇게 나는 엄마가 되었다.


조금 삐딱하긴 하지만, 결혼도 하고 싶었고, 아이도 원해서 가졌다. 하지만 누구나 겪는 그 첫 경험 속에서 성숙하기는커녕 더 삐뚤어져서는 작은 일에도 날이 서는 '예민 덩어리'가 되어버렸다. 나도 몰랐다. 이렇게 섬세한 여성일 줄은. 생전 쇼핑이라고는 필요할 때만, 아기자기한 건 딱 싫어하던 내가. 엄마가 되고 보니 어찌나 그렇게 고르고 고르고 고를게 많던지.. 밤이면 밤마다 핸드폰을 손가락에 끼고 검색 질을 해댔다.


아기 숟가락을 하나 산다 해도 뭐가 좋다 뭐가 어떻다 어떤 게 먹기 편하다 어떤 게 환경호르몬이 없다 등등 숟가락 하나에 일이만 원도 거뜬히 지출할 수 있는 통 큰 엄마가 되어버렸다.


백화점 브랜드라고는 아는 게 손꼽을 정도지만, 티브이에서 잠시 지나가는 아이들 브랜드까지 매의 눈으로 캐치해서 줄줄 꽤고 있는 나. 천 원이라도 싼 쿠폰을 받기 위해서 인터넷 세상을 하루 종일 돌아다니며, 이걸로 가사에 도움이 된 양 뿌듯해하는 나. 맛있는 게 장땡이라며 생각 없이 먹던 내가, 처음으로 유기농이랄지, 자연주의랄지에 빠져서 아기 이유식 만드는데 반나절을 보내고 있는 모습을 생각해보면, 정말 기가 찰 노릇이었다.


안전불감증에 버금가도록 아무 생각 없이 살아온 나는,  TV 광고에서 잠시 지나가는 불행이 마치 내 것 인양 가슴 아파하고, 이 소중하게 키운 아이에게 큰 불행이 닥치지는 않을까 밤잠을 설쳐가며 무서워했던 밤. 대한민국에 일어났던 악몽 같은 그 사건이 일어난 후로 몇 달은, 너무 무서워 내 아픔인양 생각했다. 다 아이 때문이다.



가끔 버스나 지하철 같은 대중교통을 탈 때, 아이가 나한테 온몸을 맡기고 정신없이 잠든 모습을 보면 '아, 이 아이, 내가 자기를 놓고 가면 어쩌려고 이렇게 털끝만큼의 의심도 없이 나에게 의지하고 있는가' 생각이 들면서 코끝이 찡해지기도 했다. '이 아이는 나에게 모든 것을 의지하는데, 내가 사라지면 어떡하지'라는 근본 없는 두려움.


삐딱하고 나만 알며 살았던 내가, 온몸을 다해 타인을 위해 생각하고 존재하다 보니 하나둘씩 마음이, 몸이 삐걱대고 있었다.


나를 위한 시간이 단 일 분도 없는 삶.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혼자 앉아있고 싶다는, 그 슬픔이 나를 갉아먹을 때쯤, 다행히도 아이는 어린이 집에 갔다. 만 3년. 길다면 길고 짧다는 짧은 시간 동안에 겪은 일들은 차곡차곡 내 안에 쌓였다. 그래서 그 '돌멩이'들을 글로 토해낸다.


나와 비슷한 다른 엄마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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