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국수 한 그릇, 나의 시작

[나의 알바일지 1] 프롤로그

by 이유하


어린 시절, 엄마는 오랫동안 장사를 하셨다. 그래서 우리 가족은 가게에 딸린 방에서 생활했다. 아이 셋과 시부모님, 그리고 장사를 하며 살기 위해 가장 합리적인 방법이었던 것 같다. 나는 어릴 때 부터 늘 일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았다. 장남 며느리로서 집안의 대소사를 처리하는 모습, 그리 크지 않은 가게에서 무엇을 팔고 있는 모습, 우리 밥을 차리고 집안일을 하는 모습 등. 얼마나 고단했을까 싶지만, 어린 시절에는 좋았다. 요리를 잘하는 엄마는 언제나 맛있는 음식을 해주셨고, 집에 가면 늘 엄마가 있었으니까.


엄마의 가게는 그 옛날 햄버거집을 시작으로 완구점, 철물점을 거쳐 어느 시점에는 식당으로 자리 잡았다. 나는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엄마가 하는 가게에서 종종 알바를 했다. 서빙을 하기도 하고, 주문을 받기도 했다. 한 때는 칼국수집을 했었는데, 김밥과 손칼국수를 파는 작은 분식집 같은 분위기였다. 가게를 지나야지만 집으로 들어갈 수 있는 구조였기 때문에, 사실 가게는 나의 삶이자 일상이었다.


브런치에 다시 글을 연재하고 싶다고 생각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나의 알바 연대기’였다. 어린 시절부터 수많은 아르바이트를 전전한 까닭은 워낙 관심사가 다양하고 한 가지 일을 꾸준히 하지 못하는 탓이었다. 그렇게 살다 보니 결혼할 때까지 한 번도 어딘가에 취업할 생각이라든가 정직원이 되겠다는 생각이 없었다. 알바만 해도 살아갈 수 있었으니까. 무슨 일을 해도 잘할 수 있다는 자신이 있었으니까. 그 이야기를 시작하기 위해 컴퓨터 앞에 앉으니 제일 먼저 생각난 것이 엄마의 가게였다.








내가 중학교쯤이었나, 많아도 고등학교 1학년은 넘지 않은 나이였다. 엄마가 잠시 시장에 장을 보러 간다고 해서 혼자 가게를 지키고 있던 참이었다. 그때까지 내 손으로 밥을 차려 먹은 적도 별로 없는 (언제나 요리 잘하시는 엄마가 있으니까) 그런 학생이었는데, 어떤 아저씨 한 분이 칼국수 먹을 수 있냐며 들어오셨다. 점심시간이 지난 무렵이라 아무도 안 올 줄 알았는데, 당황했다. 엄마가 곧 올 거라고 생각해 아저씨를 일단 앉혔다. 그런데 5분, 10분이 지나도 엄마가 오지 않는 거였다.


어린 나는 너무 초조했고, 초조하다 못해 종종거리며 앉아있다 보니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드는 거다. 몇 년을 서빙하며 엄마가 칼국수 끓이는 걸 봐왔으니까 "아! 칼국수는 내가 끓일 수 있지 않을까?" 라고. 이미 육수는 한솥 준비돼 있었고, 칼국수 면은 반의반으로 접어서 칼로 일정 비율로 썰면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이미 고명이며 양념장은 다 있었으니까.

갑자기 자신감이 붙은 어린 나는 엄마가 오기 전에 칼국수를 혼자 내보기로 했다. 아저씨에게 잠깐만 기다리라고, 엄마가 곧 올 거라고 말한 뒤 작은 냄비에 육수를 두어 국자 퍼서 끓였다. 끓이면서 칼국수 면을 썰었다. 혼자 육수를 끓이고 칼국수 면을 자르고... 그러다 보니 어느새 뚝딱 칼국수 한 그릇이 완성됐다. 대단한데? 눈칫밥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더니, 멋진 나 자신!


아저씨는 별 생각 없이 칼국수를 드셨고, 꽤 맛있으셨던 모양이다. 그렇게 칼국수까지 내드렸는데도 아직 엄마는 오지 않았다. 그런데 칼국수가 마음에 드신 아저씨가 이제 김밥도 한 줄 달라는 거다. 김밥? 김밥... 김밥을 내가 쌀 수 있을까? 물론 김밥도 재료가 다 손질돼 있었고, 김에 밥을 얹고 안에 재료를 넣고 말면 되는 거였지만. 그건 한 번도 안 해보고는 쉽지 않은 일 아닌가. 나는 잔뜩 얼어서 김밥에도 도전했는데, 도대체 이건 잘 안 되는 거다. 김밥을 싸봤어야지! 그렇게 덜덜 떨며 김에 밥을 얹고 있는데 엄마가 왔다.


엄마! (눈물이 그렁그렁) 엄마 왜 이렇게 늦게 왔어.










그게 내 첫 번째 알바였다고, 지금도 나는 생각한다. 물론 돈을 받은 것도 아니고, 가게도 우리 집이었지만, 그날의 칼국수 한 그릇은 ‘내가 무언가를 해낸 날’로 기억된다. 그 후로 나는 수많은 아르바이트를 전전했다. 문구점, 전단지 알바, 텔레마케팅, 호프집, 빕스, 배스킨라빈스, 백화점 지하 판매 등 수많은 판매직을 전전했고, 방송 쪽으로는 동화 쓰기, 방송작가, 오마이뉴스 인턴, 프리뷰, 시민기자도 해봤다. 또 학원 인포, 과외, 속독학원 선생님도 했고...


돈을 벌기 위해서이기도 했고, 나를 시험해보고 싶기도 했다. 그 이야기들을 이제, 하나씩 천천히 풀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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