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만에 다시 찾은 로잔, 세 번째 만남
처음 스위스에 간 것은 9년 전이었다. 첫 회사생활을 시작하고 신입사원이었던 나는, 겁 없이 일주일 간의 연차를 쓰고 오랜 숙원이었던 유럽 여행길에 올랐다.
출국 전날까지 야근하며 업무를 백업해놓느라 여행 중 어디를 어떤 일정으로 둘러볼지 살펴볼 정신도 없었다. 그저 첫 유럽여행이라는 설렘에 들떠 패키지여행으로 하길 참 다행이다 생각하면서.
이렇게 아무 일정도 짜지 못한 상태에서 자유여행으로 혼자 떠나는 거였다면 얼마나 난감했을까 가슴을 쓸어내렸다.
남들은 다 친구나 가족, 애인과 같이 가는 패키지여행을 덜렁 혼자 신청해놓고 나 혼자 일행 없이 일주일간 입에 거미줄 치다 오면 어쩌지 하는 걱정도 잠시 들었지만, 누구와 시간을 맞춰서 가느라 여행 일정이 흐트러지거나 원하는 곳을 못 가는 것보다는 외로움을 선택하는 게 낫겠다 싶었다. 어쩔 수 없이 뼛속까지 목적지향적이고 성취 중심적인 내 성격이 여행에서라고 쉽게 바뀔 것 같진 않았다.
꼬박 하루가 걸린 비행 끝에 마침내 밟은 유럽 땅. 프랑스 파리로 들어가 스위스 인터라켄, 이탈리아 로마와 베네치아, 피렌체를 둘러보는 여정이었다.
인터라켄의 알프스로 처음 마주한 스위스 풍경은 ‘목가적’이란 말이 제격이었다. 산비탈을 따라 늘어선 스위스 전통가옥인 샬레와 한가롭게 풀을 뜯으며 노니는 소들, 산악지대의 석회질이 함유되어 청록색 옥빛을 자랑하는 강물.
사진을 잘 찍을 줄도 모르면서, 나는 굳이 무거운 아빠의 DSLR 카메라를 들고 가서 여행 내내 눈에 보이는 풍경들을 하나라도 놓칠 새라 열심히 렌즈에 담았다. 내 이런 열정이 얼마나 뜨거웠는지 오죽하면 같은 패키지팀이었던 한 분은 나에게 혹시 사진작가시냐고 물어볼 정도였다.
그렇게 스위스와 첫 대면하고 알프스를 누비벼 나는 '이런 곳에서 살면 참 평화롭긴 하겠다. 근데 오래 살기엔 좀 지루하고 심심하겠는데?'라고 생각했다. 복잡한 서울에서 일생을 나고 자란 나에겐 목가적인 스위스는 며칠 쉬기엔 좋을 것 같은, 하지만 계속 살기엔 재미가 없을 것 같다는 인상을 남겼다. 잠깐 스쳐 지나가는 여행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곳으로 말이다.
그 여행으로부터 3년이 지난 시점, 내 인생은 많은 것이 달라져 있었다. 첫 회사에서 이직을 했고, 유럽여행 직후 혈액암 진단을 받은 엄마가 일 년 반의 투병을 마치고 가족들 곁을 떠났다.
사회초년생으로서 겪는 여러 고민과 엄마를 잃은 상실감이 겹쳐 이 시기 나는 끝없는 수렁을 헤매고 있었다. 일상의 모든 것들은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데, 목적과 방향을 잃은 내 마음만이 시계추처럼 앞으로 뒤로 진자운동을 하며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던 차에 친한 언니의 권유로 잠시 스위스에서 머무르기로 했다. 3개월, 길면 5개월 정도 가서 쉬면서 낮에는 수업도 듣고 공부도 하며 나를 돌아볼 시간을 갖기로 했다. 그렇게 나는 두 번째로 스위스를 다시 찾았다.
그리고 이 몇 개월간의 쉼은 일 년이 되었다. 예전 유럽여행 때는 와보지 않았던 로잔(Lausanne)이라는 도시였다. 우리에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본부가 위치한 곳으로 잘 알려져 있는 곳으로, UN 본부가 위치한 제네바(Geneva)와 가깝고 서쪽으로는 프랑스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불어권 지역이다.
이렇게 생각지 못하게 스위스와 다시 긴 조우를 하고, 일 년간 살면서 로잔은 나에게 제2의 고향 같은 곳이 되었다. 언어도, 문화도 다르고 한국과 시차도 7~8시간이나 차이나는 곳이건만 나는 오히려 한국에서보다 더 큰 자유와 해방감을 느끼며 이곳이야말로 내가 나답게 살 수 있는 곳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가능하다면 이곳이 됐든, 다른 어디가 됐든 유럽 땅에 발붙이며 살고 싶다는 바람이 생겼다.
하지만 그런 내 기대와 소망과는 달리, 나는 한국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천천히 한국에서의 생활에 적응하고 나를 맞추려 노력했다. 어딘가 맞지 않는 옷인 것 같기도 했지만, 그래도 평생 입어야 하는 옷이라면 안 맞는 것은 수선하고, 내가 맞춰가야지 생각했다.
그렇게 스위스는 점점 기억 속 추억의 한 조각으로 자리 잡았다. 그저 이따금씩 떠올리며 "그래, 그런 시절도 있었지." 하는 정도로. 물론 그 사이에도 운 좋게 2년에 한 번씩은 여행으로 로잔을 찾았다. 바쁜 일상 중 휴가를 내고 열몇 시간을 날아가면 아직 남아있는 지인들과 익숙했던 풍경들을 마주할 수 있었다. 7~8시간의 시차와 열몇 시간의 비행은 내가 살고 있는 현실과 스위스 생활의 다른 리듬 사이의 간극에 비하면 그리 크지 않은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코로나가 터지고 모든 하늘길이 막히면서 스위스를 비롯한 가까운 어느 나라도 갈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그러면서 나는 한국과 스위스, 여기와 거기 사이에서 언제나 부유하는 것 같은 내 마음도 이제 정리를 해야지 싶었다. 그래, 이제 스위스와의 인연은 여기까지가 끝인가 보다.
그런데 참, 삶의 타이밍이라는 것이 예측할 수 없는 순간에 생각지 못한 기회를 허락할 때가 있다.
코로나가 한창 진행 중인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스위스에 가게 된 것이다. 여행을 위해서는 아니었고, 통역을 위해 일단 한 달을 머무르고 그 이후 일정이 가능하면 조금 더 체류하기로 하면서 그렇게 5년 만에 스위스를, 정든 로잔을 다시 찾았다.
처음 유럽여행을 갔을 때는 스위스에 이렇게 자주, 오래 머물게 되리라고는 전혀 생각도 못했다. 그저 잠시 지나치는 여행지라고 생각했던 곳에서 많은 친구들과 좋은 사람들을 사귀고, 삶을 살고, 떠나고, 돌아오는 일들이 일어나고 반복되리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인연은 항상 생각지 못한 곳에서 불쑥 나타나 나에게 손을 내밀고, 때론 생각보다 훨씬 오래 그 손을 잡고 동행하기도 한다. 불확실성과 예측 불가능성. 항상 통제하고 예측하기 좋아하는 내 성향과는 정반대지만, 삶이 주는 불확실성과 예측 불가능성을 오롯이 받아들기로 하고 나는 로잔에서의 새로운 세 달 살기를 준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