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 쓸모없는 것에 대한 갈망
얼마 전 글쓰기에 대한 온라인 강의를 들었다.
글을 잘 쓰기 위한 방법이나 마음가짐에 대한 내용을 듣고 싶어 신청했는데 정작 강의자는 1시간 30분가량의 강의 중 1/3 정도를 비즈니스와 돈에 관한 이야기에 할애했다. 4차 산업과 코로나, AI라는 시대적 흐름과 퍼스널 브랜딩, 취업, 승진 등 다양한 책 쓰기 목적에 대한 내용이 주를 이루었다. 그리고 그 기나긴 서두의 결론은 결국 '팔리는 글', '먹히는 글'을 써야 한다는 것이었다. 책에 대한 브랜딩이 목표라며.
1시간 30분을 다 채우는 것이 무의미한 것 같아, 1시간을 다 채우지 못하고 나왔다.
나는 현재 예상대로라면 내년 초 정도 출간을 목표로 책을 준비하고 있다. 계약과 실제 출판까지 가는 멀고 험난한 여정에 어떤 변수가 생길지 모르기에 '예상대로' 혹은 '바라기로는'이라는 단서를 붙인다. 만약 이 책이 세상의 빛을 보게 된다면 1쇄가 다 팔린다는 낙관적인 가정 하에서도 인세로 받는 수익은 다른 노동 활동을 통해 벌 수 있는 것에는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일 것이다. 돈만 놓고 보자면 몇천 부 또는 몇만 부 이상 팔릴 것이 아니라면 절대 남는 장사가 아니다.
나는 회의적 낙관론자다. 현실적 어려움을 인정한 상태에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가지고 싶다. 들어가는 시간과 노력에 비하면 이 행위는 밑지는 장사일 수도 있다. 아니, 그럴 가능성이 매우 높다. 안 쓰는 게 남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쓴다. 그리고 출판사에서는 출간을 결심했다. 규모가 크지 않은 영세 출판사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 밑지는 행위를 하기로 결심한 가장 큰 동기는, 세상에 뱉고 싶은 내 가슴속 외침이 세상 속에 나올 수 있도록 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부질없고 쓸모없는 것 같은 밑지는 장사를 준비하며 그 외침에 대한 자그마한 메아리라도 들려오길 소망한다.
팔리는 책이 될지는 잘 모르겠다. 저자로서 이런 마음을 가지면 안 되는지 모르겠지만 냉정하게 판단해볼 때 유명세도, 알아줄만한 이력도 가지지 않은 초짜 작가의 첫 책이 손익분기점을 넘기기란 확률상 쉽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쓴다.
많이 팔리지 않아도, 세상에는 돈, 화폐경제만으로 치환될 수 없는 가치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필요’가 아닌 ‘욕구’에 따르기도 하고, 전혀 쓰잘데기 없어 보이는 일, 물건, 대상에 상당한 시간과 노력, 돈 등을 투자하기도 한다.
동물에겐 그런 일이 매우 드물다. 고양잇과에 속하는 사자나 호랑이는 먹잇감을 갖고 노는 유희를 즐기기도 하지만, 대개 동물의 세계에서는 먹고사는 것 그 이상의 문제를 고민하지 않는다.
필요 이상의 것, 의식주 이상의 가치에 대한 고민과 투자. 그것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글쓰기를 인간답지 못한 방향으로 이끌 가능성이 농후했던 그날의 온라인 교육은 마음에서 지우기로 했다.
세상에는 팔리는 책, 먹히는 책만 아니라 안 팔리는 책, 안 먹히는 책도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