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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루아 Apr 24. 2022

그 마녀가 사는 법

<3000자 단편>

통 창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눈부셨다. 살랑이는 바람과 맑은 하늘까지 완벽한 날이었다.

여유롭게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눈 게 얼마만인지, 나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앞에 앉는 그를 바라보았다.

‘얼굴도 준수하고, 커피 주문할 때 보니 지갑도 세 달은 기다려야 구매할 수 있다는 그 에스테스였지? 흐흐, 일단 합격이야.’

너무 뚫어지게 바라본 걸까? 그가 얼굴을 살짝 붉혔다. 수줍음을 많이 타나 봐?

“어쩜 저랑 디저트 취향이 잘 맞으시네요! 저도 티라미수 제일 좋아하거든요.”

나는 티라미수를 한입 가득 우물거리며 생긋 웃었다.

“아… 저 입에

그가 어찌할 바를 모르며 손을 들었다 놨다 한다.

“어머! 어디요? 여기요?”

나는 괜히 엄한 곳 여기저기를 닦아냈다. 결국 그는 내 입가에 뭍은 초콜릿 파우더를 닦아내주었다. 나는 부끄러워 어쩔 줄 모르는 표정으로 그에게 얼굴을 기대며 귓가에 뿌리고 온 베이비파우더 향을 그에게 풍겨주었다.

분위기는 점점 무르익어갔다. 이번엔 정말 느낌이 좋았다.

그때, 어지러운 발걸음 소리에 카페가 소란스러워졌다. 경찰 제복을 입을 사람들 여럿이 카페에 들어와 여기저기 들쑤시고 있었다. 몇 테이블을 거쳐 그들은 우리 테이블로 다가왔다.

“송지연 씨?”

“네, 맞는데요?”

“사기결혼 및 보험사기 혐의로 체포합니다.”

젠장! 다 된 밥에 코를 빠트려도 유분수지! 이래서 신원 확실한 사람을 골랐어야 하는데.

나는 궁시렁 거리며 손가락을 탁 튕겼다. 공기의 흐름까지 완벽히 멈춘 것을 확인하고 그 남자를 들쳐업었다.

“ 이게 무슨 고생이야. 시간 멈추는 마법은 마력 소모가 커서 한동안 다른 마법도 못 쓰는데,, 어쩔 수 없이 업고 가야겠네. 아 짜증 나.”

나는 그 남자를 어깨에 메고 낑낑거리며 카페를 나섰다. 당연히 카페를 나올 때는 그 남자의 페라로를 타고 가리라 생각했기에 타고 돌아갈 차는 없었다.

시간 멈추는 마법은 고급 마법이라 오래 지속하기 힘들다. 시간이 촉박했다. 나는 마법이 풀릴 때를 대비해 그 남자의 이빨 사이에 수면제 한 알을 우겨넣었다. 그리고 내 몸의 전 주인이 신던 짜증 나는 9 센티 힐을 벗어던지고 달리기 시작했다. 카페를 벗어나자 바로 마법이 풀렸다.

“휴, 아슬아슬했어.”

나는 택시를 잡아타고 원룸 주소를 말했다. 어깨에 남자를 들쳐 매고 타는 내가 이상했는지 운전사는 백미러로 나를 흘끔거렸다.

“아휴… 회사에서 워크샵 끝나고 대낮부터 뒤풀이를 했나 봐요. 한잔에 뻗어서는. 술 너무 못 마시는 남자도 피곤해요. 그쵸?”

나는 사람 좋은 눈웃음을 지으며 기사에게 너스레를 떨었다.

‘진짜 애쓴다. 애써.’

자괴감이 들었지만 택시기사에게 의심을 사고 싶지는 않았다.

다행히 그녀가 살던 원룸과 가까운 카페로 약속을 잡았었기에 금세 집 앞에 도착했다. 택시기사는 맨발로 남자를 들쳐 매고 걸어가는 나를 멍하니 바라보느라 택시 요금을 안 받은 것도 깜박한 눈치다.

빛이 들지 않는 서향의 비좁은 집안으로 들어와 옷가지가 널린 더러운 침대에 남자를 패데기 쳤다. 수면제가 꽤 강력했는지 남자는 마치 죽은 시체같이 미동도 없다.

그래도 언제 깰지 모르니 서둘렀다. 암막 커튼으로 얼마 되지 않는 햇빛을 완전히 가린 후 가방 속에서 10개의 초를 꺼내 불을 붙였다.

그 남자의 머리 위, 양 어깨 위, 양 손 아래, 그리고 배꼽 위, 마지막으로 두 발 아래까지 8개의 초를 차례로 조심스레 세우고 나머지 초 두 개를 내 두 손 위에 올려놓았다.

‘이럴려던건 아니었는데… 쩝’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 고른 여자가 고아에 꽤나 예쁜 외모, 그리고 때마침 소개팅까지 잡혀있다는 사실을 알고 이번에는 느긋하게 이 남자랑 재미 보며 이 몸으로 살아보려 했었다. 그런데 사기 결혼을 해서 보험료를 뜯어 내려던 범죄자라니. 바로 전 부잣집 남자아이 몸을 차지했다가 알고 보니 가정 폭력범 부모에, 회사까지 망하기 직전이라는 걸 알고 급하게 다른 몸을 구한다는 게 이렇게 된 것이었다.

이번에야 말로 짧은 생 말고 이 남자 몸으로 늙을 때까지 인간의 삶을 길게 살아보고 싶다. 주사위 말처럼 이 몸 저 몸 옮겨 다니는 것도 지겨웠다. 나랑 비슷한 연배 중에는 3~4개의 몸으로 편안히 살고 있는 마녀들도 있는데 나는 왜 이리 운이 없는지.

“뭐 그래도 이 남자는 부자인 것 같고 착해 보였으니 인간관계도 좋겠지?”

나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일렁이는 촛불을 바라보았다. 남자 머리 위 촛불이 꺼졌다. 차례로 어깨, 양 팔, 그리고 양 발에 이어 마지막으로 배꼽 위 까지 모든 촛불이 꺼지자 어두컴컴함 속 내 손 위에 초만 밝게 타고 있었다. 나는 수면제 한 알을 삼켰다. 이윽고 내 두 손의 촛불도 꺼지고 온 세상이 어둠에 잠겼다.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침대에 누워있었다. 그 남자, 아니 이제 그 여자인가? 그 여자는 아직 바닥에 골아떨어진 채였다.

나는 서둘러 짐을 챙겨 집을 빠져나왔다. 원룸 앞에 경찰차 몇 대가 주차를 하고 있었다. 그녀를 잡으러 온 것 같았다.

‘나이스 타이밍!’

 저 남자, 아니 저 여자는 자신이 다른 사람이라고 우기다 정신병원에 갈까? 아님 사기 결혼으로 감옥에 갈까? 그래도 정신병원이 낫겠지? 나는 엉뚱한 상상을 하며 단지 밖으로 유유히 벗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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