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서 죽는 날까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축하받고 즐기는 행복한 날 '생일'
죽는다고 해서 가족들에게, 친구들에게 그날이 잊혀지거나 아무 날도 아니게 되는 것은 분명 아닐 텐데 죽은 사람의 생일은 아무도 챙기지 않는다. 대신 죽은 날 '기일'을 챙긴다.
태어나면 챙기는 날 '생일' 죽으면 챙기는 날 '기일'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진대 참 슬프다.
아빠가 돌아가신 것은 그 해 9월, 추석을 일주일 남겨둔 날이었다. 아빠 생일은 8월 중순이다.
아빠는 고모집에 요양을 가 계셨다. 나는 아빠 생일을 기억하고 있었지만 연락도 선물도 드리지 않았다. 중2 한참 예민할 나이였고 부모님의 부재와 아빠의 병환으로 침울한 집안 분위기에 딱히 생일을 챙기는 게 어색했던 것도 같다. 전 주 주말에 집에 왔다가신 부모님에게 엉망인 집안꼴과 더욱 엉망인 학업에 대해 한 소리 들은 터라 골이 나있던 기억도 난다. 그렇다 한들 어려서 철이 없다는 변명을 하기에는 애매한 나이인 15살의 내 행동이 수십 년이 흐른 지금도 아프게 후회가 된다. 그 이후 아빠의 생일은 사라졌다. 아빠의 기일 만이 남았다.
얼마 후면 엄마의 칠순이 다가온다. 코로나로 식사 예약을 취소했다. 취소하다 보니 억울하다. 돌잔치는 사적 모임 예외라면서 칠순, 환갑은 예외가 아니라니,,, 생일을 챙겨드릴 날 보다 기일을 챙겨드릴 날이 점점 다가오는 부모님 생신이 먼저가 아닌가? 엄마의 생신은 시아버님의 생신과 같은 날이다. 결혼할 때는 신기하다며 인연이라고 좋아했다. 시아버님이 돌아가시고 나니 다시 엄마만의 생신이 되었다. 떠들썩하게 생신잔치를 하자면 남편이 마음이 쓰인다. 돌아가신 후에도 살아계실 때의 기쁨을 기억하며 기일 대신 생일을 기념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보지만 결국 슬프게 추억하는 날이 될 테니 부질없는 일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