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한 어른도 괜찮아] 나에게 건네는 따뜻한 말 한마디
[프롤로그]
나는 나와 잘 지내는 게 가장 어려웠다.
어디선가 본 이 한 문장 그대로였다. 나는 나와 잘 지내는게 참 어려웠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초중고등학교 시절의 나는 자신감 있었고, 밝은 미래를 확신했다. 그래서 두려울 게 없었다.
'그저 그런 시시한 어른은 되기 싫어.'
10대의 나는 이런 생각을 하는 당돌한 아이였다. 30대 중반에 '그저 그런' 어른인 나를 뜨끔하게 만드는 말이지만, 중고등학교 시절의 나는 그런 '패기'가 있었다. 그리고 확신도 있었다. 모든 게 내 뜻대로 되리라는.
하지만 ‘그저 그런’ 어른들이 알고 있듯 세상은 내 뜻대로 되지 않았다. 내맘같지 않은 날이 부지기수인데 삶 전체가 내가 그린 그림대로 그려질 리는 만무했다.
스무 살 목표했던 대학에 떨어지면서 ‘인생의 쓴맛’을 봤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깨질 게 많이 남아 있는 사람이었다. 대학교 졸업을 앞두고 보증으로 집이 기울었고, 아버지의 투병도 시작됐다. 그 사이에서 방황하던 나는 내가 가려던 길을 포기했다.
포기하고 견디는 시간을 지나 그래도 돛 하나 달고 삶이라는 바다 위에 간신히 떠 있을 정도가 됐다. 드라마라면 여기서 주인공이 모든 역경을 헤치고 마음의 상처 따윈 잊은 채 멋있게 성공해야 하지만 현실에선 내상 입은 병사의 귀환 정도였다.
취업으로 입에 풀칠할 걱정은 덜었지만, 내 안에 꽤 많은 상처가 아물지 않은 채 쌓여 있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는 상처가 아물 기회보다 덧날 일이 더 많았다. 나는 어떨결에 어른이 됐지만, 나를 위로하는 법을 몰랐다.
“나 원래 내 얘기 잘 안 하는데, 이상하게 너한테는 하게 돼.”
중학교 시절 친구가 내게 했던 고백처럼 나는 다른 이의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람이었다. 상대의 이야기에 공감하고 위로하는 능력이 어린 내게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정작 나는 나에게 따뜻한 말 한 마디 건네지 못했다. 목표를 정해놓고 달려가는 깡다구는 있었지만, 넘어진 나를 일으켜 세우는 데는 서툴렀다. 그렇다고 내 얘기를 남에게 잘 하지도 못했다.
무뚝뚝한 내가 나를 이끌고 행군을 하다보니 만신창이가 될 지경이었다. 더 늦기 전에 내가 나를 돌봐야 했다. ‘남에게 관대하고 자신에게 엄격하라’지만 나에게도 친절한 내가 필요할 때가 있었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건넸던 따뜻한 말과 긍정의 기운은 내게도 필요한 것이었다.
날 위로하고 일으켰던 말과 생각들이, 나를 닮은 이들에게도 작은 위로가 됐으면 좋겠다.
시시한 어른이어도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