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한 어른도 괜찮아 ①] 핫샤워 행복론
건강과 욕심은 비례한다. 아플 땐 ‘몸만 건강하면 바랄 게 없겠네’ 싶다가도, 아픈 데 없이 평범하게 지낼 땐 세상의 모든 불만이 다 내 것이 된다.
10년 동안 항상 적었던 월급은 더 적어 보이고, 9평짜리 원룸은 오늘따라 더 비좁게 느껴진다. 취미로 배우는 스쿼시는 마음처럼 늘지 않고, 해가 뜨고 지는 일상은 무미건조해 버석거릴 지경이다. 재미있는 일들은 나를 모두 피해가고, 지루한 하루만 남은 기분.
그럴수록 나를 제외한 사람들은 더 행복해보인다. 그날따라 인스타엔 깨끗하고 반짝이는 큰집에 사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고, 그들의 일상은 작은 정사각형 밖에서도 깨끗하고 포근할 것만 같다.
그 순간 나는 잘난 게 없는데 비교까지 하는 정말 시시한 어른이 되어 버린다.
뜨거운 샤워가 주는 행복
심술이 잔뜩 난 날들은 그렇게 찾아오지만, 사실 나는 소박한 사람이다.
하루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퇴근 후 돌아와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는 순간이다. 운동 후라면 그 행복감은 두 배. 좋은 향이 감도는 바디워시로 거품을 내고 수증기가 뽀얗게 올라오는 뜨거운 물을 끼얹을 땐 ‘그래 이게 행복이지’ 싶은 생각이 절로 든다. 걸을 때 다음으로 좋은 아이디어가 많이 떠오르는 순간이기도 하다.
어린 시절 나는 ‘뜨거운 물이 나오는 따뜻한 욕실’을 행복의 조건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아마 은연중에 ‘번듯한 욕실’은 당연한 집의 요소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취업을 하고 독립한 이후 ‘따뜻한 욕실+뜨거운 샤워’ 조합은 내 행복의 제1요소가 됐다.
남들이 들으면 당연하게 여길 그 항목을 집을 구할 때에도, 작은 행복을 얘기할 때에도 손꼽게 된 건 독립하고 얻은 첫 번째 집 때문이었다.
2010년 회사 수습 시절, 부동산에서 분명 ‘2층’이라고 소개해 들어간 집은 등기부등록상엔 2층이었지만, 사실상 옥탑방에 가까웠다. 원래 1층이었던 건물 위에 증축을 하는 바람에 여름엔 덥고 겨울에 추운 어설픈 집이 탄생한 거다.
겨울에 보일러를 아무리 돌려도 따뜻하지 않고, 새벽이면 발이 시려워 잠에서 깨던 2층집(이라고 쓰고 옥탑방이라 읽는다). 단열 제로의 그 집에선 급기야 화장실에 둔 폼클렌징이 얼었고, 현관문마저도 얼어붙어 열리지 않았다. 덕분에 겨울철 아침이면 문을 발로 차 열며 출근을 해야 했다.
얼마 전 <나 혼자 산다>에 잔나비 보컬 최정훈씨가 공중화장실에서 냉수 샤워를 하는 장면이 나왔는데,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2층같지 않은 2층집’에서 씻을 때면 너무 추워 밖에서 씻는 기분이 들 정도였다.
오죽하면 당시 노조위원장에게 “연봉협상을 우리 집에서 하자”고 했을까. (투쟁! 그 집에서 사는 4년 동안 ‘옥탑방 연봉협상’을 주장했지만 이뤄지지 않았다.)
시시한 행복도 행복이다
여행 중에도 ‘핫샤워’는 큰 행복이었다.
2015년 떠난 네팔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트레킹에서 하루 이틀은 핫샤워는 커녕 핫세수도 못한 날이 있었다. 혹시나 고산병이 올까싶어 물티슈로 얼굴만 대강 닦으며 버티다 포카라로 내려와 뜨거운 물을 마음껏 끼얹었을 때의 행복이란. 떡진 머리를 감고 뽀얘진 얼굴로 맥주 한 잔 마시러 숙소를 나설 때 나는 행복감에 팔랑거렸다.
핀란드엔 팬츠 드렁크라는 문화가 있단다. 헐렁하고 편안한 옷을 입고 집에서 술 한 잔 하며 행복을 느끼는 거다. 뜨거운 샤워 후라면 행복은 말할 것도 없겠지.
시시한 행복도 행복이란 걸 알게 됐다
- <땐뽀걸즈> 중
시시해서 행복이라고 생각지도 않았던 것들이 사실은 행복이었다. 뜨거운 물이 콸콸 나오는 따뜻한 욕실도, 무릎 나온 고무줄 바지를 입고 늘어져서 보내는 별거 없는 저녁도. 이런 게 행복인가 싶겠지만, 살다보니 그런 게 행복이었다.
물론 나는 오늘도 로또에 당첨된다든가, 내가 모르는 재산을 상속받는다든가 하는 커다란(그리고 허무맹랑한) 행복을 꿈꾸지만 이 시시한 행복 때문에 작지만 간지럽게 행복하다.
오늘도 운동을 마치고 뜨거운 샤워를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