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방인 Oct 26. 2022

잠시만 빌릴게요(바위공원 캠핑장)

대게는 바다를 보러 강원도로 간다.

하지만 나는 산을 보고 나무가 보고 싶을 때 강원도를 찾는다.

수령을 짐작하기 힘든 나무들을 보고 있으면 한없이 내가 작게 느껴진다.

웅장하게 단단한 모습으로 서있는 나무 아래를 정처 없이 걷다 보면 모든 게 덧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시간들을 마주하는 게 좋다.


강원도로 들어서는 초입부터 능선을 따라 시선을 태우고 갔다.

해보다 낮은 능선을 따르다 구름을 뚫을 듯 높아지는 능선까지, 쭈욱 따라가다 보면

길이 끝났나 싶다가 또다시 나와 같은 높이로 함께 가고 있는 능선을 발견하곤 했다.

그렇게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강원도에 들어섰다.





무료 오토캠핑장이라는 바위공원 캠핑장.


평일인데 주말인 양 인산인해였다.

다른 곳으로 가야 하나 고민하던 차, 무질서함 속에 다른 곳과는 다른 뭔지 모를 질서가 느껴졌다.

관리 감독하는 사람은 없지만 서로가 서로의 감독관이 되어 나름의 규칙을 지키고 있는 모양새 같았다.

적당한 공간을 두고 서로의 자리를 방해하지 않는 선 안에 세워진 텐트와 카라반, 캠핑카, 차박 텐트들..

알게 모르게 조심스럽게 움직이는 행동들에서 타인에 대한 배려가 느껴졌다.

왠지 있어도 괜찮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저녁이 되었다.

대게 사람이 이 정도로 많으면 조용함을 바라면 안 된다는 것을 그간의 캠핑 경험을 통해 배웠다.

적어도 한 두동에서는 시끄러운 웃음소리가 밤새도록 들리기 마련이었다.

모처럼 하는 모임일 테고, 더불어 사는 세상이려니 하는 마음으로 어느 정도는 감내할 준비를 하는 게 나았었다.

 정도는 감수할 마음으로 있어야 나의 심신에도 안정을 찾을  있기 때문이.

헌데 참 별일이었다.

해가 지고 나니 조용해도 너무 조용해졌다.

다들 이곳을 떠난 듯 몹시 고요했다.


규칙이 정해져 있는 캠핑장에서조차 이렇게 조용한 곳은 만나보지 못했던 것 같은데

이런 날도 있다니 신기했다.

괜스레 이곳에 있는 사람들 모두 좋아질 것 같았다.

지금 기분이라면 내일 아침에는 모두에게 아침인사라도 건넬 태세였다.





캠핑을 시작하면서 바라는 것은 바른 캠핑 의식과 최소한의 양심이다.

그저 기본만 스스로 지킨다면 누군가를 독려하고 계몽할 필요도 없이 괜찮을 것 같은 기본 말이다.


'머무른 흔적을 남기지 않고 다니기'


사실 그곳에 누가 있었었나 싶게 다니고자 한다면 그다음은 어렵지 않아 지기 때문이다.

그게 기준이 된다면 쓰레기는 당연히 되가져 가게 되고, 내가 흘린 것은 없는지 돌아보고 확인하고 떠나게 된다. 내가 흘려보내는 소음 또한 다스릴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러려면 내가 주인이라는 주인의식보다 더 먼저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 여기를 잠시 빌려 쓰는 것이라는

겸손한 마음일 것이다.

어느 하나 내 것인 것이 없다는 생각으로 다니다 보면 자연스레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고, 어디가됐든 아니 온 듯 다녀가게 될 테니 말이다.





좋은 캠퍼들과 나란히 있으니 부쩍 이런저런 생각들이 많아졌다.

특히나 자연을 이고 지고 다니는 우리 캠퍼들부터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누구의 변화도 아닌 나로부터 시작되는 변화가 전체의 변화를 이끌어 낼 것이라 생각했다.

우리가 다니고 싶은 장소들이 본연의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그런 태도와 양심들이  함께여야   .


자연은 애초에 누구의 것도 아녔으니 말이다.

.

이전 08화 하늘 어딘가(홍천강)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