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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방인 Oct 26. 2022

하늘 어딘가(홍천강)

여러 번 지나가는 길에 찜해둔 곳이다.

다음에는 저기로 가자고 이 길을 오가며 수차례 이야기했던 곳.

그렇게 말하기를 1년이 지나 드디어 도착했다.

홍천강 줄기를 따라 있는 작은 한켠. 멀리서 보고는 아담해서 좋을 것 같다 생각했었다.

가까이 와보니 짐작보다 꽤 넓고 더 괜찮았다.

적당히 멀면서 강원도의 정취는 느낄 수 있는 그에 부합하는 곳으로 역시 맞구나 싶었다.



평소 홍천강 줄기를 따라 그 위치 언저리로 여기저기 다니다 보면

나와 비슷한 생각으로 떠나온 사람들이 많아서인지 자연보다 사람이 더 눈에 띄게 많아 보일 때가 종종 있다.

속세를 떠나고 싶은 사람들이 정말 많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사실 그때마다 그 틈바구니에 있지 못하고 자꾸만 돌아 나오게 되었었다.

캠핑할 때는 곁에 자연만 두고 싶은 마음이 큰 탓일 것이다.

아무튼 사람이 많아 보이면 네 번 중에 두 번은 돌아 나오게 되었다.

그렇게 따지면 사실 홍천강 주변은 우리에게 늘 좋은 곳만은 아니었다.


하지만 오늘은 괜찮을 것 같았다.

사람도 생각보다 많지 않거니와 계신 분들 모두가 같은 마음이신 듯 주위가 고요했다.

그리고 뭣보다 홍천강을 바라보는 기암절벽의 자태가 기세 등등한 것이 마음에 들었다.

잔잔한 강가 앞으로 바짝 집을 세워두니 이곳의 에너지를 흡수하고 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무리하게만 아닐 정도로 강가 가까이 카라반을 세웠다.

테이블을 두고 밤에 불멍 할 수 있는 자리 정도의 여유는 두고 세웠으니 나름 훌륭해 보였다.






급격히 떨어지는 온도에 허겁지겁 옷을 걸치고 장작을 쏟았다.

여름내 접어두었던 불멍을 가을 초입에 서둘러 꺼내는 날이었다.

얼마 만에 불멍인지, 장작 쏟아지는 소리에 벌써부터 신이 났다.

불빛이 거의 없는 곳에 타닥타닥 장작 타는 소리만이 주위를 감쌌다.

적막함 속에 들리는 리드미컬한 나무 타는 소리가 내 어깨를 토닥였다.

따뜻해지는 공기와 함께 이만큼이 세상의 전부 같아 마음마저 소박해지기 시작했다.

나를 보는 내가 한없이 너그러워지고 있었다.




장작 타는 소리만 남고 사위가 아득해지는 순간.

캠핑의 절정이 시작되었다.

그간의 불필요했던 감정들이 동시에 소각되는 시간이 계속 되었다.




기분 좋게 잠든 하루였다.

-저기요, 일어나세요

낯선 아저씨의 목소리였다.

일어나 창을 열어보니 의자 다리가 1/3쯤 잠겼다.

강도 밀물과 썰물이 있었나. .

밤새 비도 오지 않았는데 말이다.

잠이 덜 깬 상태로 나가 허겁지겁 물건들을 옮기고 카라반도 옮겼다.

그러고 나서 주위를 둘러보니 우리 같은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그들 모두 조용분주해 보였다.

다들 이른 아침부터 밀려온 강과 사투(?) 중이었다.




헌데  와중에 바로 앞에 가득  물안개가 너무 아름답게 느껴졌다.

하던 일을 계속해야 하는데 물안개에 홀려 그만 정신을 놓고 말았다.

가득  물안개 사이로 스며드는 주변의 풍광까지 보고 있자니 이곳이 하늘 어디쯤인가 싶어졌다.

축축하게 젖어드는 시간이 신비롭게 느껴졌다.



물이  들어오기 전에 깨워주신 이웃분께 감사함과 동시에 물안개를 놓치지 않을  있게 불어 나준 강물한테도 고마웠다.

모든 건 생각하기 나름이었다.


저절로 훗훗 웃음이 났다.

속절없이 웃게 되던 겁 없이 좋은 아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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