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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방인 Oct 26. 2022

그곳에 살듯(목도강수욕장)


노지를 정하기 전에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조건 중 하나는 산책로다.

반려견과 함께하다 보니 산책로가 없다는 건 꽤나 불편하고 반갑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장소 검색 시 가장 염두에 두는 것 중 하나는 산책의 가능 여부다.





캠핑을 다니다 보면 대부분이 불편하고 거친 길들이 많다.

그렇지만 그 길이라도 있으면 감사할 따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걷기에 좋은 땅이 어디든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걸을 수 있는 길만 있어도 감지덕지일 때가 제법 많았다.






그러다 우연히 여기처럼 반듯한 길을 만나면 대접받는 것 같은 기분마저 들기 시작한다.

잘 다듬어진 길이 걸음걸음 놓이고 사이사이 이쁜 꽃들까지 함께 보이면

우리 모두 신이 나는 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특히  녀석들이 좋아하는 들풀들까지 길 따라 쭈욱 나있기라도 하면

이런 날은 더더욱 길고 긴 산책시간을 갖게 된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하는 산책이 시작되는 것이다.

끝도 없이 이어진 길처럼 정처 없이 걷고 또 걷는다.

그 사이를 우리는 서로 투닥거리기도 하고, 신나서 뛰기도 하고, 어디서도 본적 없는 벌레들의 등장에 괴성을 지르기도 한다.  

낯선 길 위에서 쌓이는 추억들이 동행한다.





비가 내렸다.

비가 오는 날은 장소와 상관없이 모여지는 공간이 더 협소해진다.

어닝을 지붕 삼아 우리 모두 그 안으로 옹기종기 모이게 되는데 그 모습이 우스우면서 재밌다.

한 명이 지나가길 가만 서서 기다렸다가 그제야 다른 한 명이 아슬아슬하게 지나간다.

체격이 있는 우리 집 식구들은 하나같이 다 몸을 조금씩 더 웅크리고 있다.

남들이 보기에는 불편해 보일지 모르지만 나는 이 순간이 좋다.

구태여 정하지 않아도 서로에 대한 배려에서 묻어나는 행위들이 넘쳐나는 시간.

신경 써서 보지 않으면 모르는 티 안나는 배려들이 나는 과한 친절함보다 좋게 느껴져서 자꾸만 웃음이 새어 나온다


비로 인해 흩어졌던 시간들이 모이기 시작한다.

비로 인해 흩어졌던 시선들이 모이기 시작한다.

빗소리를 음악 삼아 모여서 나누는 대수롭지 않은 이야기들로 수다스럽다.

그저 비만 올뿐인데 참 달라지는 게 많아지는 상황이다.


소리로 기억되는 우중 캠핑은 공간은 줄어드나 그 시간만큼은 굉장히 입체적으로 변하게 된다.





여기저기 닿는 곳이 많아진 요즘 여행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생각하고 있다.

차창밖으로 지나치는 수많은 마을들을 보면서,

혹은 산책하면서 만나는 사적인 그들의 공간들을 설핏 보면서,

내 투박한 시선이 닿는 곳을 어떻게 느껴야 할지를 생각하곤 한다.


단순히 사는 것처럼 여행하고 싶고, 친절하게 여행하고 싶었는데

그곳에 살고 있는 것처럼 여행하는 건 어떨까 싶은 생각마저 든다.






담백하고 담담하게 걷기에는 따뜻한 길이 내도록 이어지니 자꾸만 드는 생각들이다.

이방인처럼 적당한 시선으로 다니는 게 오히려 더 좋아 보이지는 않을까.

이곳에 살고 있는 사람의 시선으로 본다면 어떤 정취로 느껴질까.

좋을까, 혹은 지루할까.

끝도 없이 이어지는 상념들이 속수무책으로 이어진다.

 




늘 그런 건 아니지만 더러 만나게 된다.

마음을 주고 싶은 곳. 혹은 마음을 덜어놓고 가고 싶은 곳.

그런 날은  그곳에서 살고 있는 사람처럼  는냥 걷고 싶어 진다.

그러면 나는 어디에나 속해 있지만 또 어디에도 속해 있지 않은 사람이 된 것 같아 가벼워질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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