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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방인 Oct 26. 2022

완벽한 자유(울진)


이 작은 집에서 고이는 시간들이 매번 다르게 쓰이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완벽했던 여름휴가.


작년에 7번 국도 여행을 하다가 정해 두었던 곳.

하늘을 옮겨다 놓은 색에 놀라서 이 바다에 다시 와야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렇게 일 년 만에 돌아온 울진이었다.




예약해둔 곳도, 정해진 곳도 없이 길 위에서 지내고 그러다 힘들면 그제야 다른 방도를 생각해보자고 했다. 계획 없는 일주일을 울진에서 진득하게 보내기로 한 것이다.


출발하는 날은 여름이었지만 며칠 후 태풍 소식이 있어 다소 흐린 날이었다.

하지만 날씨와 상관없이 작년 그 바다를 상상하며 기분 좋은 출발이었다.

그래서인지 긴긴 시간을 달려 도착했는데도 피곤하지가 않았다.

역시 그때의 기억이 맞는구나, 여전히 하늘이 두 개구나 싶었다.




도착하자마자 물놀이를 시작했다.

치열하게 살아온 시간들을 보상받아야지.라는 명분을 반드시 채워서 가려는 듯 참 심술궂게 시작했다.

이 맑고 넓은 바다에 사람이라고는 우리뿐이었다.

해삼, 고동, 게, 물고기 등 바다생물들이 모두 나와 반기고 있는 곳에 유유자적 떠다니다 보니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아슬아슬하기만 했던 감정의 날줄들이 느슨하게 풀리면서 서서히 평화로워졌다.





이런 자유로움에 대한 갈증으로 비행기까지 타고 멀리 떠났었는데..

그곳에서조차 못 느껴본 해방감을 울진에서 느끼다니.

이렇게 좋은 기분을 빨리 글로 쏟아내고 싶었다.




평소 시간이 주는 구속감이 상당한데 우리는 시간으로부터도 자유로워졌다.

내 시간인데도 내가 관여하지 못했던 시간들이 나로부터 흘러나오기 시작하고

내가 주체가 되니 진정한 자유를 얻은 것 같았다.

그렇게 바다에서 놀고 쉬고 먹고 다시 바다로 가는 시간을 반복했다.

단조롭지만 다른 어느 때보다 풍요로웠다.





우리는 지금도 그날을 이야기하면 행복하기만 하다.

평소와 다른 에너지를 얻는 데에는 반듯한 침대, 쾌적한 날씨, 맛있는 음식, 친절한 서비스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곳에서 있었던 일주일 동안은 어느 때보다 청결하지 못했고, 침상은 녀석들의 모래로 늘 자글자글 거렸다.

날씨도 오락가락해서 비도 여러 차례 맞았고, 씻기 위해서는 필요한 물을 계속해서 공수해 와서 써야 했다.

전기도 따로 발전기를 돌려서 사용해야 했고, 그마저도 도중에 고장이 나서 애를 먹였다.

먹을 것도 충분치 않아서 그때그때 해결해야 했다.

어느  하나 쉬운 것이 없는 일주일이었다.


하지만 이런 번거로움들이 있었음에도 우리는 그날을 여전히 최고의 휴가로 뽑고 갈망한다.

울진 앞바다를 내 집인양 드나들었던 시간,

남의 시선에서 사라졌던 그날의 시간들을 언제나 그리워 한다.





그때의 추억과 함께 오늘도 길 위에서

매 순간 감동하고, 감격하고, 격렬하게 동요하며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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