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방인 Oct 26. 2022

산이 좋아 바다가 좋아(만원의 행복)

날은 몹시 흐렸고

바다는 좀처럼 빠르지 않았던 날이었다.

그렇게 우연히 닿은 곳에서 나는 충만해지고 있었다.




평소 주거지가 바다 근처라 그런지 바다가 그립지 않았다.

흔해지니 소중함이 덜 해지고,

일상의 명징한 순간에도 그 존재는 놓쳐버리기 일쑤였다.

바다보다 숲이 좋고, 나무가 좋고, 그래서 산이 좋았다.

라고 늘 확신에 차서 이야기했다.


세월이 켜켜이 쌓이는 나무를 좋아하고

그런 나무가 있기 편한 곳, 원래 있어야만 하는 제자리.

분명하게 산을 더 좋아했다.




내내 버석거리던 마음이었다.

건조하다 못해 푸석거리는 마음이 영 불편했다.

그런 마음을 안고 찾은 곳이었다.

처음에는 바다는 뭐, 라는 마음이었고 가는 동안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그저 바깥 공기만 쐬면 좋겠다 했다.





그렇게 닿은 곳에서 나의 마음들이 모아지고 있었다.


그날의 바다는 내가 처음 만나는 것이었다.


답답한 마음 틀을 넓혀주고

무게가 있는 마음들은 나누어 가볍게 하는 법을 알려주듯

바다는 고요하게 머물렀다.

전체를 품듯 바다는 부질없는 마음까지 담아 주었다.

무언가를 잃은 상실감도 달래주었고,

바쁜 일상에 지친 나에게 느림도 선사해 주었다.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무료함에는 살랑살랑 웃어 주었다.


온종일 바다의 몸짓을 함께 하는 하루였다.


산이 좋아 바다가 좋아?

....... 바다도 좋구나.


 


하루를 보냈다.

전 날과는 다르게 맑은 날이었다.

밤새 들리는 조용한 파도소리가 어찌나 좋던지,

파도소리에 섞이는 새소리는 또 어찌나 귀엽던지,

주위를 둘러싼 화음들이 기막히게 좋아서 다른 종류의 음악들은 찾게 되지 않았다.

온종일 들리는 다른 종류의 소리들이 내내 마음을 간질였다.






열 발자국 남짓한 거리에 바다를 두고 있자니 바다가 소리 없이 나를 품기 시작했다.

나는 의자에 앉아 나의 이야기를 하고, 바다의 마음을 담았다.

차분해지는 시간을 갖게 되고, 아주 여유로운 동작들이 이어졌다.

모든 것이 다른 곳보다 더 침착하고 느리게 진행되는 것 같았다.


고요한 바닷소리, 얌전히 지나가는 바람,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나무 냄새까지

저마다의 방식으로 흘러가는 곳.

자연스레 이곳에 흡수되다 보니 이 모든 것들이 많이 아름답다가 어느 순간에는 처연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루가 온통 따뜻해지다가 감정이 증폭되어 그게 무엇이든 상관없이 쏟아내고 비우고 가고 싶어졌다.







처음 이곳을 방문했을 때는 캠핑할 곳이 있을까 싶었다.

다듬어지지 않은 곳을 지나 코너를 돌어가면 마침내 서해바다에 안겨있는 작은 섬(?)이 실체를 드러냈다.

마을 주민들께서 관리하시는 곳으로 그 다정함이 곳곳에 묻어나기 시작했다.

적재적소에 다듬어져 있는 공간들, 이곳을 많이 거닐어 본 사람들이 만들어 낸 맞춤 공간들이 있는 것이었다. 그 조화로움과 함께 위치마다 각자의 매력까지 더해졌다.

바라보는 곳에 따라 바다가 다르게 그려졌다.

어느 곳은 단체로 와서 즐기기에 적합하고 또 어느 곳은 홀로 와서 조용히 보내기 좋아 보였다.

게다가 서해 바다라 밀물과 썰물의 변화까지 있으니  움직임들로 하루 다채롭게 쓰이는 듯했다.


여러 번 다녀가도 늘 좋은 곳임이 분명했다.






이전 04화 on the road(단양생태공원)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