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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퍼플슈룹 Dec 22. 2022

영업은 아무나 하나?

실적표 확인하세요!

이번 달 실적표 확인하세요!


실적표 게시되는 날 = 우울한 날


매월 말이 되면 가이드 사무실 책상 유리 안에 실적표가 자리 잡고 있다. 실적표에서 내 이름 찾기는 아주 쉽다. 언제나 가장 마지막에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휴...


사실, '관광통역안내원'은 관광객과 함께 여행만 하면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영업이 기본일 줄이야...' 한국에 들어오는 일본 관광객 대부분은 여행사를 통해 항공과 호텔만 예약하고 온다. 이런 관광객들에게 회사에서 운영하는 일정(시장투어, 투어 등)을 소개해서 어떻게든 일정을 하게 만들어한다.


 일명 '옵션'


물론 회사에서 제공된 일정을 이용하면 편하다. 차량이 제공되고 핵심 일정만 이용할 있기 때문이다. 정말 편하게 다니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적합할지 모르지만, 저예산으로 발품 팔 생각으로 오는 젊은 층에게 큰 메리트가 없다. 더군다나 일본 사람들은 한국에 여러 번 온 경우가 대부분이고, 처음 왔다고 해도 다양한 정보를 갖고 있기 때문에 많은 도움이 필요 없다. 그리고 주요 관광지에는 일본어 하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필요한 말만 하다 보니까 자세한 소통은 어렵지만, 여행의 참맛은 손짓 발짓 아니겠는가?


'일정을 하고 싶다'라고 먼저 제안하는 관광객도 있지만, 내가 먼저 말을 꺼내는 일은 드물었다. 한국을 온전하게 느끼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물론 내 속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마음... 그들에게 제안했을 때 의심의 시선과 말투를 감당하기 어려웠다. 더군다나 거절을 감당할 자신도 없었다. 결국 이 모든 것을 견디지 못해 아웃바운드 일을 했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간절하게 바라고 즐기던 일이었지만, 직업에 대한 생각과 성격차이로 결국 3년 만에 포기했다.






그렇게 호된 20대 중반을 보내고, 서른을 코앞에 두고 새로운 진로를 고민하던 중 제약회사에서 아웃바운드 일을 시작했다. 어쩌면 아웃바운드가 뭔지 몰랐기 때문에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내가 하는 일은 제약회사 제품을 한 번이라도 구매한 경험이 있는 고객 명단을 보고 전화해서 재구매할 수 있도록 하는 일이었다.


자신이 없었지만 전화를 돌렸다. 전화받자마자 화내는 사람, 내 말을 다 듣고 바쁘다며 끊는 사람, 재구매하는 사람, 먹어보니 효과도 없던데 왜 전화하냐며 역질문하는 사람 등 다양했다. 몇 번의 거절전화를 경험하고, 다음 번호를 누르지 못했다. 전화할 때마다 심장이 터져 죽을 것 같았다. 죽을 것만 같은 내게 매월 보는 실적표는 사약과 같았다. 이렇게 일하다가는 '죽겠다'싶었다. 문득 옛 기억이 떠올랐다. '너, 이러다 망한 적 있잖아'


결국 3개월 만에 그만뒀다. 세상에 여러 가지 직업이 있다. 수많은 직업 중 남들은 잘하는데  나는 못하는 일,


'영업은 아무나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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