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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퍼플슈룹 Jan 22. 2023

신부님의 세뱃돈

어린 시절의 나와 마주하게 되는...

올해 꼭 하겠다고 다짐했던 것 중 하나가, '성당에 꼭 가기'였다. 오래 다녔지만 그래도 약 10년 만에 다시 나가서 어색할 만도 했지만, 큰 어려움 없이 잘 다녀왔다. 다른 날보다 일찍 가서 기도드리고, 성경도 었다. 미사가 시작될 무렵, 안내 방송이 나왔다.


오늘 미사 끝나고 신부님이 나눠주시는
세뱃돈과 떡을 꼭 받아가시길 바랍니다.



'엥? 세뱃돈이라니? 아이들에게만 준다는 것도 아니고 신부님이 무슨 돈으로 세뱃돈을 주신다는 거지? 이 많은 신자에게?'


온통 의문이었다. 성당을 30년 가까이 다녔어도 신부님께 세뱃돈을 받아본 적 없는 나는 이 상황이 의아했다. 이상해서 고개를 이리저리 돌렸는데 이런 소리가 들려왔다.


"어머, 신부님이 또 주시네. 작년에도 주셨는데"

"작년에는 얼마 주셨더라? 2천 원이었던가?"

"다른 곳으로 가셨는데도 주시네. 감사해라"


그렇다. 이 성당 신부님은 명절에 세뱃돈 주시기로 유명하신 분이었다. 최근 교구 인사이동으로 세뱃돈을 준비해 주신 신부님은 다른 성당으로 가셨고, 새로 오신 신부님이 덕담과 함께 떡과 세뱃돈을 대신 나눠주셨다.


'어쨌든, 세뱃돈이라니...' 기분 좋았다.


세뱃돈을 받고 자리에 앉아서 사람들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신기한 점을 관찰했다. 세뱃돈을 받는 할머니, 할아버지, 어머니, 아버지들이 마치 어린아이처럼 즐거워하셨다. 난 그 모습을 한참 바라보다가 집에 갔다.


집에 돌아온 나는 부모님께 세배를 하고 세뱃돈을 받았다. 물론 받지 않으려 했지만 계속 거절할 수 없어서 감사한 마음으로 받았다. 그리고 성당에서 있었던 일을 부모님께 말씀드렸더니,


"세뱃돈을 주기만 했던 사람들이 받았으니 기분이 좋았네."


그렇네.


'지금은 누군가의 부모지만, 그분들도 어릴 때 부모님께 세뱃돈 받고 즐거워하던 시절이 있으셨지!' 하고 생각하니 마스크 속 해맑게 웃던 어른들의 미소가 이해됐다.


많은 어른들에게 뜻깊은 의미가 되었을 세뱃돈을 주신 신부님을 뵙지 못해 아쉬웠지만, 신부님의 귀한 세뱃돈 덕분에 생각주머니는 더 커진 것 같다.


2023년 설날, 오늘이 오래 기억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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