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끗희끗한 새치와 부스스한 머리카락이 눈에 거슬릴 즈음 미용실을 다녀왔다. 내가 다니는 미용실은 개인이 운영하는 곳이다. 코로나19 이후 예약 손님이 겹치지 않도록 운영하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간 그날, 헤어디자이너 실장님이 초등학교 4학년쯤으로 보이는 남자아이의 머리를 염색하고 있었다. 아빠로 추측되는 남자는 핸드폰에서 눈도 떼지 못하고 있었다. 꽤 젊은 사람으로 보였다.
'혼자 있어서 좋았는데, 오늘은 같이 있겠군' 생각했다. 잠시만 기다려 달라는 실장님 말에 나는 갖고 간 책을 읽고 있었다.
"지금부터 절대 움직이면 안 된다. 알았지?" 실장님이 아이에게 간곡히 부탁하고 있었다. 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실장님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아이가 머리를 만지며 엉덩이를 들썩 거렸다. 그러던 중 의자에 파란색 염색약이 묻어버렸다. 자리로 돌아온 실장님이 깜짝 놀랐다. "가만히 있으라니까, 의자에 다 묻었네. 어쩌나! 의자에 계속 앉아 있으려니 답답하지? 내가 음료수 곧 갖다 줄게. 조금만 기다려줘!"
실장님이 침착하게 응대했다. 그러나 여전히 들썩이는 아이 엉덩이. 그때 들리는 날카로운 목소리,
"가만히 좀 있어라!"
아빠였다. 아이는 잠시 멈칫하더니 진짜 가만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아빠의 눈과 손은 핸드폰 머물러 있었다. 음료수와 간식을 아이에게 건넨 실장님이 나에게 왔다. 아이 살피랴, 염색하랴 실장님의 눈이 바빴다. 그런 실장님의 바람이 무색하게 간식을 다 먹은 아이는 다시 움직였다. 이번에는 서서 돌아다녔다. 다시 들린 아빠의 음성,
"너는 애가 왜 그 모양이냐? 좀 가만히 있으라 했지? 그것도 가만 못 있으면서 어떻게 운동을 하냐?"
아이에게 온갖 비난이 쏟아졌다. 아이가 갑자기 고개를 떨구었다. 내 눈에는 보이는 게 아빠 눈에는 보이지 않아서 마음이 퍽 아팠다.
실장님에게 물었다. "아이가 파란색으로염색하나 봐요?"
"지금 축구선수로 활동하고 있어요. 정기적으로 와서 탈색해요" 아이는 축구선수였다. 그동안 화려한 머리카락 색깔로친구들의 부러움을 산 경우가 많았다고 했다.
'이런...'
축구 실력도 중요하지만, 아이의 인성이 더 중요하죠! 라고 말했던 손흥민 선수 아버지 모습이 문득 떠올랐다.
사실, 아이는 의자가 불편했다. 실장님이 어린이용 키높이 방석을 받쳐줬지만, 오래 앉아 있으면 얼마나 불편하겠는가? 결국 빼고 의자에 앉아 있었다. 작은 체구의 어린이가 어른이 앉는 의자에 앉아서다리를 계속 뻗고 있어야 했다. 이 또한 얼마나 불편했겠는가? 계속 움직일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아빠는 핸드폰만 보고 있느라 아이의 불편함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리고 아이만 질타했다.우여곡절 끝에 아이는 탈색을 마치고 돌아갔다. 아빠의 뒤를 따르는 아이의 앞날이 걱정스러웠다.
가정에서 부모는 스마트폰 때문에 자녀들과 자주 다툰다.
"너는 어떻게 맨날 핸드폰만 붙잡고 있냐?"
"핸드폰 뺏는다"
"핸드폰 당장 이리 내!"
스마트폰은 자녀가 성장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주제다. 여기서 어른들은 한 번쯤 생각해야 한다.
'나는 아이들 앞에서 핸드폰만 하고 있지 않나?'
'나는 핸드폰 없이 아이들에게 얼마나 집중하고 있나?'
'내가 힘들다고 아이에게 영상을 보여준 경험이 몇 번쯤 되나?'
'스마트폰을 건강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아이와 이야기를 나눈 경험이 있는가? 있다면 얼마나 자주 했는가? 스마트폰의 좋은 점, 나쁜 점을 함께 알아본 경험이 있는가? 스마트폰 사용시간, 빈도 등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경험을 제공했는가?'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나는 아이를 얼마나 기다려줬는가?'
미용실에서 만난 아빠가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고 아이에게 집중했다면 움직임의 원인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랬다면 비난과 날카로운 말로 아이에게 비수를 꽂지 않았을 텐데... 안타까운 일이었다. 같은 어른으로 아이에게 미안했고, 반성하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