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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퍼플슈룹 May 13. 2024

내 안에 화(火) 있다.

다시 시작

6개월을 고민하고, 6개월을 준비했다. 그리고 2021년 12월 31일, 7년을 다닌 직장에서 내 자리를 내어줬다. 고민에서 퇴사까지 1년이 걸렸다. 하루라도 빨리 떠나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었지만, 마음과 마음 사이에 아이들이 걸려있었다. 진심으로 아끼고 열정을 쏟아부었기에 그들 곁을 쉽게 떠날 수 없었다. 마지막 날까지 모든 걸 토해내고 퇴직했다.


잔뜩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쓱쓱 몇 번 넘기고 축 늘어졌던 몸을 일으켜 세웠다. 2022년 1월 1일 새해 아침이었다. 창문을 열고 하늘을 바라봤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이유 모를 눈물에 적잖이 당황했지만,  얼른 눈물을 훔치고 냉동고에서 꽁꽁 얼어붙은 만두와 가래떡을 꺼냈다. 떡을 물에 불리고 다시 창가로 갔다. 이번에는 의자를 가지고 가서 편하게 앉았다.

 

짱구야, 새해에 들을만한 음악 틀어줘.


집에서 나의 유일한 말벗, 그녀에게 1월 1일 들을만한 음악을 부탁했다. 음악을 들으며 하늘을 바라보는데, 다시 눈물이 흘렀다.


'어제까지 미친 듯이 일했는데, 이제 난 백수가 됐구나. 49살, 이제 난 뭘 하며 살아야 하지? 절대 아이들과 만나는 일은 하지 않을 거야."


학교와 내가 하는 연락을 피해 모텔에서 아이와 함께 숨어있는 엄마 때문에 퇴직하는 마지막 날까지도 골머리를 썩었던 나. 어쩌면 내 다짐은 당연할지도..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각이 이어지더니 그 끝에 뜨거운 기운이 찾아왔다. 해결하지 못하고 나온 일들이 나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퇴직했으니까 이제 됐어. 나도 몰라!'


이성은 그랬다. 그러나 치밀어 오르는 화(火)를 주체하지 못해서 손을 부르르 떨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나에게 시간이 필요했다. 내 안에 있는 화(火), 그 근간을 찾아야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시작은 사명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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