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잘하는 또라이 상사 vs 일 못하는 착한 상사

여자의 적은 여자?

by 퍼플슈룹

인사이동 발표가 있기 전, 점장이 나를 불렀다.


"곧 인사이동이 있을 거야. 00 씨도 인사이동 대상이야"

"이제 1년 반 밖에 안 됐는데, 승진은 아닐 테고 어디로 가요?"

"개봉동이야. 부점장 승진해서 가는 거야. 그런데 문제가 있어" 너무 뜸을 들여 걱정이 앞섰다.

"그 매장을 아무도 가려고 하지 않아", "왜요?"

"거기 점장이 보통이 아니야. 여자 점장인데, 이상하게 여직원을 못살게 굴어. 그 점장 밑으로 들어가면 얼마 못 버티고 다 그만둔다. 본사에서 고민이 많아. 00 씨로 결정한 건, 점장보다 나이도 많고 잘할 것 같아서야. 다행스러운 건 그 점장이 일은 잘해. 배울 건 많을 거야. 잘 참고 배워서 점장으로 승진하자"

"이렇게 겁주고, 나보고 어떻게 일하라고 하는지 알 수가 없네요"

"금방 점장으로 발령 내 줄게. 조금만 참아주라"




얼마 후 숨 막히게 바쁜 여의도점에서 한가한 개봉점으로 출근했다. 처음 만난 점장은 경계하는 눈빛과 새초롬한 표정으로 나를 대했다. 나는 크게 유념하지 않고, 열심히 일했다. 바쁘고 힘든 매장에서 일했기 때문에, 집도 가깝고 한가한 이곳이 좋았다.


여자의 적은 여자?


그런데 점장이 이상하긴 했다. 남직원에게는 지나칠 정도로 친절했다. 반면 나에게는 불친절, 트집, 가시 돋친 말투였다. 너무 불편했지만,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가보자!'라는 생각이었다.


어느 날 점장이 주간 근무표를 작성하고 사무실로 사라졌다. 본인 사정을 점장에게 미처 말 못 한 직원이 나에게 대신 말해달라고 해서 부점장이니 대신했다. "누가 보면 00 씨가 점장인 줄 알겠어? 난 일정 바꿔줄 생각 없으니까, 00 씨 일정과 바꿔주든가 마음대로 해요" 늘 이런 식이었다.


미친 거 아닐까?라고 생각했던 적은 너무 많았다.


그날은 기분이 괜찮았는지 즐겁게 대화를 나눴고, 분명 웃으며 사무실로 들어갔다. 얼마나 지났을까? 갑자기 문을 벌컥 열고 나오더니 "00 씨, 내가 아까 해 놓으라고 한 건 했어요? 워크인 청소는 끝났어요? 월말 재고 정리하고 있나요?" 폭풍으로 몰아치기 시작했다.


여기서 내가 같이 화를 내면 큰일 날 것 같아, 참고 이야기했다. "점장님, 제가 다 해놓을게요. 힘드신 것 같은데, 퇴근하시면 어떨까요?"

"그럼, 그럴까? 남편이랑 전화 통화하다가 대판 싸웠더니, 조금 예민하네. 그럼 나 가요"


그랬다. 이 사람은 직원들에게 화풀이하는 몹쓸 상사였다. 출근 시 표정, 목소리, 몸짓에 따라 그날의 점포 분위기가 정해졌다. 말대로 일은 잘했다. 위기 상황 대처 능력, 서류 처리, 서비스 정신 등 배울 점이 있었다. 그렇지만 예상이 전혀 되지 않는 상사와 일한다는 것은 상상 이상이었다.


6개월 후 임신 준비한다고 갑자기 퇴직을 선언했다. 다들 기뻤지만 티 내지 않았다. 담당 슈퍼바이저가 나를 불러 말했다. "고생 많았어. 지난 10년 동안 저 사람 밑에서 끝까지 버틴 사람은 00 씨가 처음이야. 승진은 문제없다"



반면, 이런 상사도 있었다.


"국장님, 사장님이 찾으세요" "갑자기 왜?"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분위기가 좋지 않아요. 조심하셔야 할 것 같아요" "큰일 났다. 알았어. 일단 올라갈게"


안절부절못하던 국장님은 사장님에게 연신 깨졌다. "광고 수익이 이것밖에 안 나면 어떡해! 우리 회사 어렵게 굴러가는 거 몰라? 노력하고 있어? 광고국에 대리가 2명이나 있는데, 뭐 하는 거야? 장국장, 이렇게 할 거야? 이럴 거면 국장 자리 내놔!" "김대리, 이대리가 실적을 채우지 못해서 이번 달 광고 수익이 적었습니다. 제가 말하겠습니다" "그게 내 앞에서 할 얘기야? 국장이란 사람이 직원들이 잘못했다고 말하는 거야?" "죄송합니다"


사장님도 알고 있었다. 국장님이 어떤 사람인지..


광고국장님은 사람들에게 싫은 소리를 못하는 착한 사람이지만, 업무능력이 떨어졌다. 직원들에게 밥과 술을 사지만, 그들을 책임지지 않았다. 그래서 국장님 편은 아무도 없었다. 광고국 직원들도 '무능력한 상사와 일하기 싫다', '다른 부서로 가고 싶다'라고 매일 투덜댔다. 착하지만 일 못하는 국장님은 끝까지 버텼다. 이직이 불가하다는 것을 본인이 제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구차해 보였지만, 안쓰러웠다.




지금 생각하면 모두 내면이 약한 사람이었다. 그렇지만 정말 만나고 싶지 않은 직장 상사다. 피하고 싶지만 꼭 만나게 된다. 그래도 둘 중에 굳이 고른다면 누가 더 나을까?


난 좋은 상사를 바라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비겁하지 않고, 무시하지 않는 사람.

서로 존중하며 일하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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