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살, 4년 근무한 000 피자를 퇴직하고 대학원 진학을 했다. 사회복지에서 아동학으로 전공을 바꿔서 진학했기 때문에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그렇지만 하고 싶었기에 모든 것을 감수하고 퇴직했다.
우여곡절 끝에 석사 2년을 마치고 구직을 시작했다. 그런데 서류에서 계속 탈락이었다. 왜인지 알 수가 없었다. 좌절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던 중 뼈를 때리는 이야기를 들었다.
"고학력자에 경력도 없고, 나이까지 많은 사람을 누가 채용하냐! 너는 팀장으로 가야 될 나이인데, 경력이 없으니 팀원으로 밖에 못 가. 근데 뽑겠니? 팀장보다 나이 많은 너를?"
결국 난, 외면하고 외면했던 상황과 직면하게 됐다. 속상했다. 대학원 공부하면서 조교 하고, 청소년 상담복지센터, 멘토링 등 꾸준하게 일했기 때문에 취직을 걱정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다.
그날도 이불속에서 괴로움에 머리를 뜯던 중, 대학원 선배에게 연락이 왔다.
"00아, 보육교사 자격증 있다고 했지?"
"응, 언니"
"혹시 우리 어린이집에서 일해볼 생각 없니?"
"내가? 경력이 없는데, 괜찮을까?"
"종일반 교사라서 4시간만 봐주면 돼서 부담 없어."
"진짜? 괜찮을까?"
"배우면서 하자!"
그렇게 난 보육교사의 길로 접어들었다. 늘 성인과 일했던 내가 과연 잘할 수 있을지 기대 반, 걱정 반이었다. 처음에는 종일반을 맡게됐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특별한 기술 없던 나는 6, 7세 유아에게 우리 동요를 일본어로 가르치기 시작했다.
반응은 폭발적!
부모님들이 너무 좋아했다. 반 아이들도 친구들이 못 하는 것을 하니까 더 좋아했다. 특히 6세 부모들이 나를 내년에 7세 반 담임을 시켜달라는 요청이 쇄도했다. 부모님들의 폭발적인 요구로 나는 다음 해 7세 반 담임이 됐다.
그런데 종일반도 함께 맡았다. 그리고 알게 됐다.
'종일반 교사와 담임은 하늘과 땅 차이'라는 것을.
당장 신학기 수업 준비, 교실 디자인, 각종 서류를 해내야 했다. 손재주 하나 없는 나는 눈물을 흘리며 매일 야근, 주말 출근을 자청했다. 이런 나를 안쓰럽게 여긴 원장 언니가 많이 도와줬다. 원장이기 이전에 친한 선배였고, 본인이 나를 불렀기 때문에 신경을 많이 써줬다.
그렇게 한 달, 두 달 시간이 흘렀다. 큰 기대도 하지 않던 종일반 교사가 반향을 일으켰고, 부모들에게 인기도 많던 내가 지치지 않고 열심히 하니까 원장 언니의 부모님이 살뜰하게 챙겨주셨다. 그런데 이런 모든 것들이 화근이 됐다.
경력 없는 보육교사의 처절한 몸부림이 불러온 은따.
눈물로 지새웠던 시간이 쌓이며 나도 성장하기 시작했다. 익숙해지기 시작한 업무, 유아와 좋은 유대관계 맺기, 반 부모들과 쌓은 신뢰 등 일에 재미를 붙이기 시작했다. 이제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생겼는데, 내 주변에 동료 교사가 아무도 없었다. 티 나지 않게 말이다. 당직해도 친한 선생님끼리는 기다려주기도 했지만, 내가 당직할 때 아무도 없었다. 전체 회식이 아닌 이상, 선생님들끼리 식사해도 나에게 얘기하지 않았다. 물론 꼭 말할 필요는 없음을 나도 안다. 하지만 너무 티가 났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내 앞에서 말을 아끼기 시작했다. 말이 흘러나가는 것을 우려했던 것이다.내가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내 코가 석자였기에 나설 수 없었다.
내 나이 37살 난생처음 겪게 된 은따. 27년 직장 생활하면서 전혀 모르고 지냈는데, 37살에 은따라니. 기가 막혔다. 내가 원장 후배인 점, 종일반 교사가 급해서 내가 온 점, 7세 반 담임을 맡게 된 이유 등 모든 선생님들은 알고 있었다. 그런데 결과가 이랬다. 물론 나와 원장 언니는 예상했다. 뭐가 됐던 '낙하산'이었으니.
예상했지만, 막상 이런 결과가 펼쳐지니 견디기 쉽지 않았다.
낙하산이란 오점을 만회하고, 원장 언니에게 피해 가지 않게 하려고 보다 더 열심히 했다. 눈물로 지새웠던 수많은 날의 결과가 은따라니.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이런 내 상황을 원장 언니도 눈치챘고, 걱정을 많이 했다. 그렇지만 이 또한 내가 견뎌내야 했고, 경력이 없다는 결점을 극복하기 위해 묵묵하게 일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오래 버티지 못하고 2년 만에 사표를 냈다. 표면적 이유는 박사 진학이었다.
영, 유아가 주는 매력을 잊지 못해 논문 학기 때 다른 어린이집에서 계속 근무했다. 결국 체력적인 이유와 상호작용이 확실하게 되는 아동을 만나기 위해 지역아동센터로 방향을 전환했지만, 어린이집 근무했던 경험은 나에게 중요한 밑거름이 됐다. 영아, 유아 시기를 경험했기에 아동을 이해하고,은따를 당해봤기에 아동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됐다. 또 학부모들과 깊은 대화도 나눌 수 있었다.
은따는 어려움 없이 직장 생활했던 내게, 멈춤 신호였다. 1년 반의 경험, 삶의 밑거름이라고치부했다. 그렇지만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