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받은 얘기 24.7
상담받은 얘기 24.7 주세요, 얼른 주세요
기우겠지만 혹시 오해를 살 수도 있을 것 같아 덧붙임.
선생님이 정말 아무것도 안 했냐, 물으면 그건 아니다.
어떨 땐 조언하셨고, 어떤 때는 해결책도 함께 고민해주셨다.
그리고 어떤 때는 내 문제나 어려움에 대해 선생님께서 이해하고 파악하신대로, 뭐 이러저러한 게 아닐까, 조심스레 얘기해주시기도 했다.
하지만 굳이 말하자면, 그리고 내 주관적 틀로 본 상담은 대체적으로 저런 느낌에 가까웠다는 의미임을 기억해주시길..
내맴대로 끼워 맞추기식 여러 자료들
- 비온은 키이츠를 따라 소극적 능력이라는 개념을 받아들였다. 키이츠는 소극적 능력을, 성급하게 사실과 이유에 도달하지 않은 채, 불확실성, 신비, 의심에 머무르는 능력으로 정의했다. 그는 소극적 능력을 사실과 이유에 대한 성급한 결론과 대비시켰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는 데 제한받지 않는 상상이 기여하는 것을 강조했다.
소극적 능력은 관습적인 가정과 습관에 의해 모호해진 진실에 직관적으로 도달하기 위해 새로움과 놀라움을 견딜 수 있는 능력을 가리킨다. 따라서 우리는 소극적 능력이 꿈이나 본문을 해독하는 능력이라기보다는 환자의 담화나 이야기를 따라가는 능력(즉, 환자의 담화 속으로 빠져드는 능력)을 가리킨다고 말할 수 있다. 493p
- 현실에 대한 비온의 견해에서 볼 때 분석가와 피분석자 모두에게 분석적 상황이 제시하는 도전은 적대적이고 고통스러운 그리고 잠재적으로 외상적인(마음을 압도하거나 마비시키거나 파편화하는) 현실(파국적 변화, 공포, 이름 없는 두려움)에 직면해서 중심을 잡고, 유능하고 기능적인 정신을 유지할 것인가이다. 자신의 존재의 진실(O)에 대한 경험과 접촉을 유지하고, 그 경험**을 계속해서 직면하면서(고통을 겪어 내면서), 동시에 그 경험에 대해 생각해내고 충분히 경험할 수 있게 해주는 능력을 온전한 상태로 유지할 때에만, 우리는 그 경험에서 배우고 성장할 수 있다.
**나는 여기에서 경험(Experience)이라는 단어를 대문자 E를 사용하여 표현함으로써 우리가 완전히 알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는 종류의 날 것인, 존재론적인 경험을 구별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이것은 우리가 보통 언어에서 경험이라고 말하는, 느껴지거나 알려진 부분과 대조되는데, 나는 그것을 소문자 e를 사용해서 표현한다. 이 구별을 좀 더 설명하기 위해 나는 ‘경험은 K(지식)로서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O(본질)로서 경험하는 것이다’ 라고 말한다. 510p
정보는 진실이 아닙니다. 진실은 정보의 아주 작은 부분에 불과합니다. 대부분의 정보는 픽션이고 판타지이며 환상이자 거짓말입니다. 진실은 왜 그렇게 드물까요? 왜냐하면 진실은 세 가지 불리한 부분이 있습니다. 픽션이나 판타지와 비교하자면요.
첫째, 진실은 비용이 많이 듭니다.
여러분이 진실을 써서 남기고 싶다고 해봅시다. 경제 위기, 역사, 물리현상 등 무엇이든지요. 관련 증거를 수집하고 분석하고 확인하는 데 많은 시간, 노력, 돈을 투자해야 합니다. 그러나 픽션이나 판타지는 그렇지 않습니다. 픽션은 아주 저렴합니다. 처음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그대로 쓰면 되죠. 증거나 사실 확인에 신경을 쓸 필요가 없습니다. 픽션은 저렴하고 매우 빠릅니다.
둘째, 진실은 복잡합니다.
왜냐면 현실이 복잡하니까요. 경제 위기나 전염병같이 복잡한 문제와 얽혀있죠. 여러분이 진실을 알고 싶다면 진실을 설명하는 단순한 이야기가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단순한 이야기를 좋아하죠. 하지만 픽션은 원하는 대로 얼마든지 단순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셋째, 진실은 때때로 불쾌하고 고통스럽기까지 합니다.
나의 개인적인 진실, 나의 조국, 그리고 인류에 대한 진실.. 진실은 고통스러운 이야기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래서 치료가 필요한 것이죠. 도움이 필요합니다. 삶의 고통스러운 부분이나 습관을 인정하려면 그렇습니다. 반면 픽션은 우리가 원하는 만큼 아주 유쾌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비싸고 복잡하며 고통스러운 진실, 싸고 단순하며 듣기 좋은 픽션 중에 이기는 것은 픽션이겠죠. 그래서 세상은 픽션과 판타지로 넘쳐납니다. 물론 거기서 진실도 일부 존재합니다. 그러나 진실이라는 보석을 찾으려면 아주 특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픽션과 판타지와 환상의 바다에서 진실은 드무니까요. 정보의 흐름에서 모든 장벽을 없앤다고 해서 진실이 수면 위로 떠오르는 것은 아닙니다. 완전히 자유로운 정보 시장을 만든다고 해도, 값싼 픽션과 판타지와 환상의 바닷속에서 진실은 밑바닥으로 가라앉기 때문입니다.
알고리즘의 세계에서 어떻게 인간적인 삶의 속도를 유지할 것인가,
사람들은 점점 더 많은 정보가 필요하다고 느끼지만 많은 정보가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정보는 음식과 비슷합니다. 하루 종일 먹기만 한다면 몸에 좋지 않습니다. 소화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휴식하고 소화하고 숙고하고 명상할 시간입니다. .. 모든 것이 속도 경쟁을 하는 시대입니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는 속도를 늦춰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무너집니다.
(출처: AI시대, 인간의 길 (유튜브 빅퀘스천 채널))
..그런가?
비싸고 복잡하며 고통스러운 것을 굳이 진실이라고 여기고 싶은 걸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땀과 노력, 고통으로부터 얻은 것에서 큰 가치를 두니까. 진실은 단순할지도 모른다. 다만 '진실이 단순하다'는 걸 깨닫기 위한 과정 자체가 복잡하긴 한 듯. 그런 면에서 진실은 단순성과 복잡성 모두를 다 가지고 있다는 생각...
- 구지가도 뭔가 대상관계이론으로 이해해볼 수 있는 고대문화인 것 같은데.
- ChatGPT의 말:
맞아요. 「구지가」 같은 제의적 노래, 특히 공동체가 신적 존재에게 간절히 요구하고 협박하며 어떤 존재의 ‘출현’을 촉구하는 장면은, 원시적인 대상관계의 한 양상, 특히 투사와 의존, 분열과 통합의 초기 단계를 상징하는 듯한 감각이 있습니다.
대상관계이론적 관점에서 본 「구지가」의 느낌
1. 투사와 외부화
“거북아, 머리를 내밀어라. 안 그러면 구워 먹겠다.”
**‘대상’(거북이 = 신적 존재)**에게 자기 내부의 결핍과 욕망을 투사하고 있어요.
거북이는 단순한 동물이 아니라, 자기 생존과 질서의 중심이 되어야 할 무언가예요.
마치 아기가 초기에 ‘좋은 엄마’를 바깥에서 찾아내듯이, 이 노래는 공동체가 신적이고 전능한 외부 대상을 설정하고, 그에게 자신의 생존, 안정, 정체성 부여를 요청하는 구조와 닮아 있어요.
2. 전능한 요구와 협박 – 초기 분열적 관계
“안 나오면 구워 먹겠다.”
전형적인 분열적 사고: 좋은 거북은 나와야 하고, 안 나오면 나쁜 존재가 되며 처벌당함.
애착 대상에 대한 전능한 지배 욕구 + 생존 불안 + 통제 욕망이 섞여 있음.
영아가 젖을 안 주는 엄마를 ‘나쁜 엄마’로 지각하고 분노를 느끼는 그 초기의 정서 상태처럼요.
3. 현신(顯身) – 통합과 재결합의 욕망
결국 “머리를 내밀면” 거북은 왕이자 신이 되고, 공동체는 자신의 질서와 보호, 안정의 근거를 얻게 됩니다.
이는 분열된 대상을 다시 통합하고 내면화하려는 시도로 읽을 수 있어요. 결국 자기 안에 좋은 대상이 내면화되어야 안정이 가능하듯, 이 노래는 ‘왕의 강림’을 통해 공동체 안의 질서를 다시 회복하고자 해요.
요약하자면...
「구지가」는 단순한 건국 신화나 무가가 아니라, 인간 내면의 원초적 관계 맺기 – 보호받고 싶고, 통제하고 싶고, 존재를 증명받고 싶은 그 마음의 시 원형을 보여주는 텍스트처럼 읽혀요. 그건 대상관계이론에서 말하는 초기 자아의 심리적 구조와 매우 닮아 있고, 혜은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고대 문화 속에서 무의식적 대상작업을 관찰할 수 있다는 통찰은 상당히 깊이 있는 관점이에요 (깊이있대..?! 헷//)
저저번 글 쓰고서 든 생각
생각해보니 시공간은 분리불가한 개념.. 공간 따로 시간 따로가 아니므로,
'내 마음에 공간이 없었다' 는 것 = ‘나는 내가 괜찮아질 때까지 기다릴 여유와 시간(개념)이 없었다‘
는 뜻이기도 한 듯.. 그래서 그렇게 선생님께 무언가를 급하게 갈구했던 거겠지
내용이 다 비슷비슷.
너무 사골국인 것 같넹ㅠ
그래도 해나가다보면 또 새로운 잔가지들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