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죽고 나면 방이 이상하게 커진다.
가구와 창문은 그대로인데, 그 사람이 차지하던 공기의 자리가 비어 방 전체가 한 뼘 멀어지는 듯하다.
처음 그 감각을 느꼈을 때, 나는 죽음을 부피의 소멸로 이해했다.
하지만 곧 깨달았다.
그 소멸의 크기가 모든 사람에게 같지 않다는 사실을.
어떤 사람이 떠나면 방 하나가 커지고, 어떤 사람이 떠나면 세계가 커진다.
죽음은 그 차이를 지워주지 않는다.
중세 화가들은 '죽음의 무도'를 그렸다.
해골이 교황, 왕, 광대의 손을 잡고 춤추는 장면.
살아 있는 동안의 위계가 뼈 앞에서 무의미해진다는 이야기다.
그 그림들은 성당 벽에 걸려 굶주린 농부들의 위로가 되었다.
저 포악한 영주도 결국 같은 곳으로 간다는 약속이 사람들을 버티게 했다.
하지만 그림 속 교황은 여전히 교황의 표정을, 농부는 농부의 눈을 하고 있었다.
화가는 위로를 그리려다 불평등을 함께 그려버린 셈이다.
에피쿠로스는 말했다.
"내가 있는 동안 죽음은 없고, 죽음이 오면 나는 없다. 그러므로 죽음은 나와 무관하다."
이 논리는 서늘한 우아함을 지녔지만, 나는 온전히 믿지 않았다.
죽음이 두려운 건 죽음 자체가 아니라, 가까워지는 시간들 때문이다.
미처 하지 못한 말들, 남겨지는 사람들의 얼굴 때문.
에피쿠로스의 말은 그걸 알고도 외면하는 듯하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명상록』에서 적었다.
"알렉산드로스도, 그의 마부도 결국 같은 곳에 묻혔다."
마부는 자기 죽음에 대해 아무것도 남기지 못했다.
권력을 가진 자만이 권력이 무의미하다고 태연히 말할 수 있다.
평등을 논하는 목소리가 불평등한 자리에서 나오는 아이러니다.
죽음이 같다고 해도, 죽음에 이르는 길은 같지 않다.
어떤 이는 흰 시트 위에서, 모르핀이 고통을 지우는 가운데 사랑하는 이들의 손을 잡고 죽는다.
어떤 이는 이름 모를 땅에서 혼자, 아무도 오지 않는다는 걸 알며 말하지 못한 채 끝난다.
어떤 이는 치료비 때문에, 살 수 있었는데 가난으로 죽는다.
결과가 같아도 경험은 다르다.
하이데거는 죽음을 "가장 고유하고 비관계적이며 추월 불가능한 가능성"이라 불렀다.
누구도 대신 죽어줄 수 없으니, 가장 혼자인 사건이다.
하지만 혼자인 건 균일하지 않다.
같은 어둠 속에서도 온도가 사람마다 다르다.
죽음은 죽은 뒤에도 끝나지 않는다.
몸은 사라지지만 이름은 남는다.
아니, 어떤 이름만 남는다.
돌에 새겨지는 이름과 아무 데도 새겨지지 않는 이름.
기억되지 않는 죽음은 두 번 죽는 셈이다.
한 번은 몸이, 한 번은 흔적이.
더 불편한 건, 죽음이 개인을 끝내도 세상의 구조는 끝내지 않는다는 점이다.
착취와 불의의 흔적이 남고, 재산과 가난이 상속된다.
억압자가 죽는다고 억압이 사라지지 않는다.
죽음이 개인을 평등하게 만든다 해도, 세상을 평등하게 만들진 않는다.
사르트르는 죽음을 삶의 마침표가 아니라 강제 중단이라고 봤다.
교향곡이 마지막 음표로 끝나는 게 아니라, 연주 도중 전기가 나가는 것처럼.
어떤 죽음은 4악장을 마친 뒤 오고, 어떤 건 1악장도 끝나기 전에 온다.
더 살았더라면 달라졌을 삶을 같다고 말하는 건, 그 말을 들을 수 없는 이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왜 우리는 '죽음은 평등하다'는 위로를 붙들었을까?
살아 있는 자들을 위해 필요했다.
억울하고 짓밟힌 이들이 내일을 버티도록.
그 믿음이 종교와 민중의 이야기가 되고, 성당 벽의 그림이 되었다.
틀린 위로라도 쓸모 있다.
사람을 살아남게 하는 건 하나의 진실이니까.
하지만 그 위로를 너무 빨리 꺼내는 건 조심스럽다.
살아 있는 동안의 불평등을 가볍게 덮어버릴 수 있다.
저 사람도 죽는다는 사실이 지금의 고통을 덜어주지 않는다.
위로가 정직하려면, 닿지 않는 자리를 먼저 알아야 한다.
사람이 죽고 나면 방이 커진다.
그 방에 앉아 있노라면 알게 된다.
죽음이 그 사람을 누군가와 같게 만들지 않았다는 것.
생의 무게와 모양이 여전히 그 사람의 것이라는 것.
그리고 나 역시 언젠가 누군가의 방을 크게 만들 것이라는 사실.
죽음은 모든 것을 평등하게 만들지 않는다.
다만 우리 모두가 같은 유한성 위에 서 있음을 보여줄 뿐.
평등이 아니라 공통성. 차이가 없는 게 아니라, 차이에도 불구하고 함께 놓인 조건.
너도 살다 죽고, 나도 살다 죽는다.
그 유한한 시간 안에서 무엇을 할지, 우리는 각자의 언어로 같은 어둠 앞에서 묻는다.
그 물음 앞에서 우리는 잠시 같은 자리에 무릎 꿇는다.
바닥의 온도는 여전히 다르게 느껴지겠지만.
Hen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