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예할 수 없는 순간에 대하여
이 물음은 답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저 곁에 머물며, 삶을 되돌아보게 할 뿐이다.
비 내리는 오후,
식어버린 커피 앞에서 이 문장을 마주쳤다.
맨발로 밟히는 못처럼, 좀처럼 잊히지 않았다.
죽음을 가정하면 시간의 질감이 달라진다.
평소 느슨한 하루가 하나의 점으로 수렴된다.
지금 이 순간으로.
가까운 이의 병, 비행기의 흔들림처럼,
그런 순간 세계는 또렷해진다.
중요한 것과 아닌 것이 선명해진다.
죽음은 삶을 흐리지 않고, 오히려 윤곽을 드러낸다.
끝이 있기에 선택은 무게를 얻는다.
우리는 죽음을 멀리 두고 산다.
그 대가는 흘러온 삶인지 선택한 삶인지 모르는 지점에 서는 일.
이 문장 앞에서 선택들을 되짚었다.
미룬 말, 삼킨 진심,
'마지막' 앞에서 이유가 얇아 보였다.
평판, 안정은 미래를 전제로 의미를 잃었다.
반면, 손해를 알면서도 지킨 것들,
스스로 부끄럽지 않았던 순간들은 차분했다.
그것은 확신이 아닌, 나와의 일치감.
두 선택의 차이는 결과가 아니라, 내가 나로서 한 것인가.
우리는 조건 속에서 선택한다.
가난, 상처, 피로.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진실이지만,
그 안에서도 방향을 정한다.
진정성은 이 긴장 속에서 자란다.
조건을 핑계 삼지 않되, 모른 척하지 않는 것.
이 물음은 죽음이 아니라 오늘을 건넨다.
지금을 또렷하게 살아라.
순간이 실제로 존재하기에.
나는 확실한 답을 내리지 못했다.
후회와 지켜온 것이 공존했다.
그 망설임이 정직한 흔적이다.
계속 물을 수 있는 마음.
비는 여전했다.
오늘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 선택이 마지막 장면이 될 테니,
조금 다르게 사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삶은 작은 차이로 쌓인다.
Hen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