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 역 9번 출구, LG 팰리스 지하매장에서 반도네온과 클라리넷 소리가 겨울의 사면을 한 계단씩 오른다. 들어본 적 없는 곡이다. Myriam Alter의 앨범 ‘이프 If'를 그에게 선물하리라.
어느 겨울이 너무 춥고, 주기적으로 어딘가로 향하는 길에 살을 갈라 에는 바람이 동반했다면, 그 겨울은 각인된다.
그 겨울이 그랬다. 그 혹한의 바람은 피학의 쾌감까지를 주었다. 지하철역에서 스튜디오에 이르기까지의 십여 분. 신세계에 이르는 길들이 종종 그러하듯, 그 길도 만만치 않았다. 그것은 입문적 삭풍이었다. 그즈음 지하철역에서 종종 닌자거북이라는 이름의 땅게로를 마주쳤다. 그와 정담을 나누며 걸어가곤 했지만 그렇다고 체감 추위가 반감되지는 않았다. 매번 대화 주제는 거의 이 끔찍한 추위에 대해서였다. 그 발레리나를 우연히 다시 만난 재즈댄스학원을 처음 추천해 준 이도 그였다.
지하철을 빠져나와 걷다 작은 신호등을 하나 건너 직선으로 이어지는 그 혹한의 순례는 오로지 로돌프의 난로를 영접하기 위해서였다. 그 겨울 온기의 중심점, 그 옆에 머물면 저절로 점화되는 것이 있었다.
그는 여전히 내 뒤로 왔고 나는 그를 내 앞과 옆, 삼면의 거울을 통해, 내가 본다는 사실을 조금도 들키지 않고 볼 수 있었다.
그는 연습에 꽤 열중했고, 배운 동작을 반복 소화한 다음엔 그 동작의 변형까지를 자주 시도하게 되었다. 나는 여전히 적응력 있고 이해심 많은 파트너로 남았고, 그는 자신의 시도에서 빚어지는 사소한 실수나 엉킴에 대해 예전처럼 그리 자주 사과하지는 않게 되었다.
앉아 쉬면서 그는 말했다.
“원래...... 그렇게 살이 잘 안 찌나요?
그는 모른다. 그와 춤추기 시작한 바로 그 시점부터 내가 말라가기 시작했다는 걸.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었다. 이 무렵 복용 중인 약물 때문인지도 몰랐다. 나는 이때, 당시만 해도 드문 직업인 미술치료사를 꿈꾸며 서울과 대전을 케이 티 엑스로 오갔다. 그 막바지쯤에서 그를 만난 것이었다. 나는 치료에 관해서라면 방법과 장르를 가리지 않고 쇼핑하던 참이었다. 그 목록에는 신비가, 역술인, 정신과 의사 등이 두루 포함되었다. 최면이 주특기인 병원도 다녔는데, 최면을 받으려면 예약해놓고 무려 일 년은 기다려야 했다. 그 중간 간간이 면담을 했다. 의사는 짧은 첫 만남을 마치며 내 곤두선 신경을 가라앉혀줄 약을 처방해주었다. 내게는 소량의 투약으로 충분한 효험을 볼 딱 그만큼의 경미한 불안증세가 있었고 신경과(神經科) 약의 효과에 대한 호기심까지 덧대어져 나의 약 복용은 한동안 이어졌다.
그 약봉지는 수면 작용을 돕는 것, 심혈관 계통 약, 항불안제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약의 이름은 간호사가 가르쳐 주었으나 빠르게 발음되어 지나간 그것들의 이름이란, 개중 약간은 여자 이름 비슷하기도 한 로라제팜 말고는 기억에서 삭제되었다. 암튼 그 약들은 신경과 약에 대한 일체의 편견을 사라지게 할 만큼 효과가 좋았다. 심지어 편안함을 넘어 지복 가까운 존재감을 갖게 했다. 신세계였다. 하필이면 그와 만나기 시작한 시기와 약 복용 시작 시기가 겹치는 바람에, 어떤 요인에 의해 내가 일용할 음식들을 먹을 필요를 느끼지 않게 되었는지 그리하여 살이 줄곧 빠지게 되었는지 파악이 힘들었다. 결과적으로 나는 그에게 한껏 가녀려 보이는 모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