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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래연 Aug 21. 2020

세월을 뚫는 목소리



                                                                                                                                                                                                                                                                          







아직은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 이곳의 첫 느낌 중엔 시간의 느린 배속도 포함된다. 


그리고 사람들도 약속을 철석같이 지키거나 하지 않는다.  충분히 늦는 건 기본이고 서로 다 그러려니 산다.


공연이 밤 11시면 실제 뮤지션의 등장은 새벽 한 시 반쯤이 되고 이 공백을 사람들은 춤추며 기다린다.


공연은 거의 아침까지 지속된다. 체력 안배를 잘하지 않으면 놀 수조차 없다.








느지막이 일어나 음악을 틀어놓고 삼바를 추고 세수를 하고 목 뒤에까지 선크림을 바른다. 

어제는 머리를 틀어 올렸더니 드러난 목덜미와 등의 일부가 타서 따가워졌다. 

화장품은 눈에 안 들어가게 좀 바를 수는 없나? 나에게 하는 말이다. 조그만 주의력이면 덜 불편할 수 있을 텐데, 어김없이 부주의해지다 같은 불편에 이르다니, 인간이란, 나란, 고약해. 










어젯밤 세우 조르지 Seu Jorge 공연장은 마치 미스 브라질 야회복 심사장 같았다. 풀 메이크업에, 그녀들의 미친 몸매를 돋보이게 해주는 브라질의 가능한 모든, 길거나 짧은, 옆구리나 등을 통째로 혹은 적당히 파낸 원피스 드레스들에선 끈과 리본들의 모든 가능한 교차방식과 위치 변경을 맛볼 수 있었다. 


미녀대회나 런웨이 같은 이 행태를 두고, 이미 많은 다른 공연을 보고 다닌 동행인들은 의아해했다.  어디서도 보지 못한 풍경이라는 것이었다. 다른 공연장에선 다들 수수하고 편한 차림였다고. 


Seu Jorge 효과였나? 그리고 대개 어리고 젊은 여자들이었고, 남녀 비율은 2:8이었다. 


여자들의 현격한 차림에 비해 남자들은, 남자들의 그것이란, 코파카바나 해변에 있다가 헐렁한 티나 하나씩 걸치곤 나타난 듯 느슨하기 짝이 없었다. 하나같이!


그중 일부는 커플이었는데, 아마도 이들 여자 있는 남자들은 자기 연인이 홀려있는 남자 뮤지션의 공연에 동참하여 그 슈퍼스타를 인정해줌을 드러내 줌으로써, 관대한 남자로서의 자부심을 입증하려는 것이 아니었을까? 흐흐 내 가설일 뿐이다. Seu Jorge가 훌륭하긴 하지.








그런데 정작 세우 조르지는.


무척 기다린 끝에 새벽 한 시 반, 세션이 모두 입장하여 이중 누군가가 재즈 반주에 어울리는 플루트를 불가 시작했을 때도 나타나지를 않아서, 또 이 상태로 이 밴드가 한 시간쯤 끄는 게 아닐까 싶었다. 


그런데, 그 플루트가 Seu였으며.

그러니까 한때는 브라질에서 가장 섹시한 남자로 꼽혔던 그를 내가 식별하지 못하였음은, 그가 이전의 완연한 섹시함으로부터 이제는 삶의 다른 단계의 풍모로 전이해갔음을 나타낸다.


그러나 목소리만큼은 세월을 뚫고 갔다. 그가 노래를 시작하자 마자는 부인할 수 없이 세우 조르지였던 것이다. 목소리는 여전히 섹시했다. 



스탠딩의 피로와 무릎 통증만 아녔어도 더 있었을 텐데, 겨우 한 시간 버티다 나왔다. 체력 왕성한 패턴의 브라질 공연을 다니려면, 조용한(이제는 조용하지도 않은) 아침의 나라에서 온 나는 체력 안배를 잘해야 한다. 낮에 몇 시간은 예비 수면을 해둔다던가. 




숙소의 베란다 빨래건조대 옆에서 이걸 쓰는 지금, 세우의 목소리가 계속 들린다. 천변 산책 때 그토록 들었었고, 누군가와 통화 직전 이어폰에 흐르던 Bem Querer도 어제 들었다. 바로 눈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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