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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래연 Aug 27. 2020

From Ipanema


                                                                                                                                                                                                                                                                                                                

이파네마 해변의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 동상















까이삐링냐 까이삐링 까이삐리 까이삐....


해변을 돌아다니며 까이삐링냐 음료를 파는 상인들의 외침은, '청량리 중량교 가요'가 '차라리 죽는 게 나요'로 바뀌듯이 슬그머니 뭉개진다. 















                                                                                          해변 바닥의 무늬








라임 섞은 마테 차

























돌돌 만 콘 모양의 땅콩






















오후 5시. 

물은 이미 차갑고 파도는 거세다. 두 번 세 번 뛰어들 물이 아니다. 바닷물 한번 찍어 바름으로 족한.


곧 샤워기로 달려간다. 물이 부드럽게 따듯한 것이, 사우나의 가장 만만한 온탕 정도다. 이렇게 바다 냉탕, 샤워기 온탕, 그다음 햇빛 열탕을 오가며 몸이 기분 좋게 느슨해진다. 



그러나 파라솔은 잘 고정되지 않아 휘청하고, 의자 또한 자리를 잠깐 뜨는 즉시 비틀거리다 날아갈 기세. 이, 해수욕의 영양가만 쏙 빠진 모든 불편을 단숨에 벗어나자면 흔쾌히 자리를 박차면 그만 일 텐데, 저, 누구의 박자도 따르지 않고 스스로 강세와 후렴구를 시시각각 빚어내는 물결이 미련을 발목 잡는다.















두 개의 하얀 풍선이 하늘 높이 저쪽으로부터 이쪽으로 밀려와서는 바람의 그림이 되듯 주저주저 맴돌다 갔다. 그런데, 가까이 보니 그것은 풍선이 아니라 두 개의 봉지였다. 아무 데나, 세상 어디에고 있는 저 보편적인 봉지가 저렇듯 우아하게 비행하는 허공의 새가 되다니!



흰 봉지에 감탄하다니, 정말 여기는 더 이상 보잘것이 없군, 오늘따라. 중얼거리고 보니, 어머 저기, 역광의 실루엣이 근사한 남자가 아이를 안고 파도 속에 들어가네, 감탄하는 순간, 애라고 생각했던 실체엔 꼬리가 달린 것이, 애가 아니라 개였으며. 저거 동물 학대 아니야? 개는 물에 잠기는 꼴로 필사적으로 헤엄쳐 모래로 올라오고, 마른 중간 크기의 개의 날씬한 실루엣은 남자를 능가한다. 



한편 저쪽에선 파라솔을 빌리지 않은 채 바닥에 깐 천만으로 버티는 진지한 분위기의 남자가 썬 스프레이로 온몸에 회칠을 하더니만 책을 집어 든다. 오호, 지성인 포스. 저러다 저 뒤의 제일 좋은 호텔에 들어가 제냐의 슈트로 갈아입은 후 전용 헬리콥터를 타고 무슨 국제회의에 참석하러 가는 게 아닐까 하는 상상. 그가 꼬박 남들처럼 파라솔과 의자를 빌렸다면 내게 불러일으켜지지 않았을 상상. 









눈앞의 권태는 때로 이런 짬에만 가능한 별별 품평회를 불러온다. 이를테면 수염 품평회. 이게 다, 방금 물속으로 웬 콧수염 남자가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콧수염은 여차하면 일본 순사처럼 보이고, 턱수염은 간신 같아. 구레나룻은 느끼해. 숀 코네리는 좀 괜찮아. 그러니까 수염이 나려면 숀 코네리처럼 생겨야 해. 결국 거의 모든 수염이 싫어, 깔깔. 

그럼 저런 수염은? 하고 동행인은 로빈슨 크로우소 풍의 수염을 가리켰다. 아, 저건 형용할 말이 없이 싫어. 



수염 품평회를 마지막으로 곧 자리를 떴다. 아마 해변에선, 해질 때까지 있었더라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드넓은 권태 속에 이런저런 익살 부를 일들이 끊임없이 잔물결 쳤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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