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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래연 Oct 29. 2020

하필 처음이

                                                                                                                                                                                                                                                



배낭여행을 처음 떠났을 때 처음 떨어진 도시는 파리였다. 5월의 파리 가로수에서는 맡은 적 없는 향기가 퍼졌고 지나는 사람마다는 각자가 자기 향기의 달인처럼 뒤로 향을 흩뿌리며 들 걸었다. 그런 도시에서 나는 초라함을 당나귀 껍질처럼 쓰고 첫 도착 후의 허기를 달래고자 빵집을 찾아 나섰다. 


얼마나 걸었을지, 생쟈크 근처 숙소에서 아무렇게나 찾아들어간 빵집에서 나는 어리숙하게 빵을 골랐다. 우리나라에선 천천히 빵을 고르지만, 난생처음 프랑스 빵집에선 사람들이 도착하기가 무섭게 줄을 서곤 해서 주춤거릴 여유도 없었다. 


근처 공원에 가 앉아 빵을 뜯었다. 치즈랑 뭔가가 적당히 녹아들어 간, 크기는 넉넉한 그것은 생소함의 맛까지 보태져 무척 맛있어서, 역시 파리 빵인가 봐 소리가 절로 나왔다. 그런데 이후에 어떤 빵을 먹어도 그 빵의 맛이 나지 않았고 같은 빵을 찾을 수조차 없었다. 유럽에서의 첫 빵이었다.




파리에선 일박만 하고 마드리드로 갔다. 꽤 허접한 호스텔이어서 어서 빨리 숙소를 옮기고 싶었던 와중에도......


아침이 크루아상과 커피로 제공되었는데, 알맞게 데워져 버터향이 살아있는 그것은 커피랑 어울려 맛이 기가 막혔다. 실은 유래가 프랑스는 아닌 어쨌든 지금은 프랑스 빵으로 되어있는 크루아상을 맛본 건 정작 스페인인 셈이었는데, 이후 어디서도 그런 식감의 크루아상을 맛보지 못했다.




또 바로 이 호스텔에서 인근 도시 톨레도에 다녀온 피로를 로비에서 달래고 있는 나른한 오후였다. 


어떤 청년이 나와 친구에게 말을 걸었다. 스웨덴 친구고 크리스토퍼라는 이름이었다. 그는 자기 이름에 대해 '짐을 대신 들어주는 사람'이라는 뜻이라고 했다. 남북한은 왜 갈라진 걸 합치지 못하냐고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둥 그는 진지하게 온갖 질문을 해대었다. 퍽이나 대화다운 대화 소통 같은 소통을 하게 되어 내심, 와, 외국애들은 이렇게 열린 마음으로 다가가 말 걸고 그러는구나 감탄하며 기뻐했는데, 이후 모든 여행에서 그런 일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았다. 크리스토퍼는 메일 주소를 가르쳐줬는데 hemipode, 한 무리의 새떼라는 뜻이었다.



처음이 끝이 되다시피 한 일들.


첫 배낭 짐은 순전히 필요에 대한 상상만으로 짐을 꾸렸고 이후의 여행들은 이 첫 배낭을 기준으로 짐꾸리기를 했는데, 그 어느 짐도 첫 짐 싸기의 완벽함에 미치지 못했다. 좋지도 않은 5킬로짜리 싸구려 배낭엔 꼭 필요한 온갖 것으로 채웠는데 모든 걸 다 완전히 요긴하게 써먹었다. 여행 노트를 만들 풀과 가위도 챙겼고, 호스텔에서 요리하기 위한 참기름을 제일 작은 안약 통에 담아 가기도 했다. 해산물이 풍부한 도시에 갈 때마다 장을 봐서는 매운 주꾸미 덮밥이나 부야베스를 만들어 먹었다. 두 달 동안 레스토랑엔 채 5번도 가지 않았다. 


이후 어떤 여행도 이와 같지 않았다. 


그래도 마지막였다고는 할 수 없다. 미래는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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