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그리 잘 느끼지 못한다. 살아 있는 사람의 마음도, 활자가 되어 배열된 마음도, 추측만 할 뿐 단번에 '이거군!'하고 느꼈다고 자각하는 경우는 드물다. 느꼈다고 자각, 느낌에 대한 이 중복된 표현은, 내 느낌에 대한 그치지 않는 의심을 반영한다. 느낀 것이 느낀 것인지, 그 느낌이라 불리는 것 맞는지 거의 의심스럽다.
동시대의 사람들이 무심이나 무감각의 병에 걸려 있다면 나 역시 같은 수족관 안을 빙글빙글 오간다. 수족관의 밖에서 수족관과 무관한 입지에서 바라볼 수 있다면 재미있을 수도 있는 여기. 이 아기자기하고 알록달록한 작고 예쁜 세계,라고 먼 외계인은 우리 지구를 보고서 말할지도 모르지. 수족관 안에선 여기가 재미있지 않다. 재미있기엔 시간이 많이 지났다.
삼한사온은 아직도 잔존하나?
요새 나는 일한일온처럼 잔존해왔다.
아침에 일어나 있으면 잠시 허공에 뭔가 반짝이는듯하는 힘으로 하루를 살다가, 그다음 날의 나는 나의 시체 처리반이 되고 싶어진다.
내가 지어 읊었던 노래는 나를 연명케 해주지 못한다. 그것이 나로부터 나온 것이었다는 사실만으로.
어디선가 불어온, 생소하다가 익숙해지는 멜로디에만 마음을 맡긴 듯 실을 수 있다. 이와는 반대로, 나 자신이라는 것은 익숙해있다가 생소해지며 떠나가려는 멜로디다. 막상 나 자신은 이 가락을 올라타고 갈 수 없다.
어쩌면 나와도 비슷한 이유로, 아마도 많은 이들이 자기 자신을 지루해할 것이다. 그렇지 않게도, 자신에게서 나온 것들이 온통 자랑스럽고 사랑스럽기 그지없다는 몸짓을 보이는 이들도 있겠지만, 속내는 모를 일이다.
아무튼 우리들은 타인이라던가 세계를 향하여, 갖은 새 모양의 주머니를 던지곤 한다. 자기를 봉인한, 하지만 자기는 그 안에 들어가 날아갈 수는 없는. 우리들 각자는 각자의 방을 지키는 무거운 열쇠, 자신의 굴곡을 외지 못하고, 누군가의 손이 잡아주기를 기다리는, 묵고 삭아가는 입을 가진.
많은 글들을 마치 점자 그림책 더듬듯 읽는다. 글자와 잘 만나지 못할 땐, 휴게소의 수많은 음식들 가운데 '지금 딱!'의 메뉴를 고르지 못하여 커피만 홀짝이고 말 때의 기분이 든다. 대부분의 경우엔 음식들의 냄새를 맡으며 맛을 상상하려 애쓰면서 식욕을 일깨워보려고 마음을 모은다. 하지만 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무언가를 만난다는 건.
정말 어쩌다 운이 좋은 날에는, 전혀 기대하지 않은 채 무심히 페이지를 넘겨가다가, 모두에게 필요한 옳은 소리들의 숲속에서 우연히 떨어진 한 개의 열쇠처럼, 지금 내게 딱인 구절을 발견한다. 드문 일이지만 가끔은 온다, 그런 순간이.
아마도 작정하여 눈에 불을 켜고 번득이려 든다면, 그 눈앞에 절대 깜박이지 않을 작은 전구처럼.
어떤 형태를 띠건 영감을 주는 것들이란, 하염없이 주저앉으려는 중력을 다시금 위로 쏘아 올린다. 혹은, 끊임없이 땅으로 아래로 흘러내려오는 온갖 허물어짐을 저 아래 둔 채로, 천공의 덮개를 밥상보 들추듯 훅 들어 올린다. 그러면 부스스 눈을 비비며, 느닷없이 마음의 동이 터 이제야 정신이 난다는 듯, 죽어감의 제자리걸음으로부터 돌아와 밥상 앞에 앉게 된다. 바깥은 여전한 아우성이고 이 소화되지 않는 소음은 다시금 밥알갱이랑 섞여버릴 터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