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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겨울의 장갑 이야기

by 래연



딱 갖고 싶은 장갑의 모양이 마음속에 있었다.

오래전 일이다.



이러이러한 장갑을 갖고 싶었었다. 이를테면 뽀얀 느낌의 복슬복슬한 앙고라쯤.

그러다 어느 날 벙어리장갑 하나를 선물을 받았다. 부드럽고 뽀얀 앙고라가 아니었다.

마음속 그 장갑하고는 아주 달라 생소했다. 가져본 적 없는 빛깔과 무늬와 결이었다. 마음속 꿈의 모양새와 달라서 얼른 대번에 좋다고 느끼지 못했다. 딱 맘에 들거나 하지 않았다.

하지만 선물해준 성의를 생각하여 끼고 다녔다. 무덤덤하게.



그러던 어느 눈 오던 날이었다. 고속도로 휴게소 전화박스에 그 장갑을 두고 와버렸다.

선뜻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 다시 가보았지만 그 자리에 있지 않았다.



바로 그 순간부터였다. 갑자기, 그 장갑의 흔하지 않은 채도의 빨강과 약간 거친듯한 실의 감촉이 어떤 독특한 생명력을 가진 하나의 개성으로 파악되면서 마음에 들어온 것은. 애초에 기대하지 않아 내가 깨닫지 못했던 그 장갑만의 완전함이 처음으로 와닿았다.



혹여나 같은 것이 있을까 검색해보았지만, 어디에서도 비슷한 것을 찾을 수 없었다.

'원래 갖고 싶었던 것이 아닌 무엇'으로만 존재하던 장갑은, 이후 유일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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