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31.
내가 보는 앞에서 나날이 병의 징후가 커가기만 하는 모리를 돌보는 요즘, 그냥 이 과정이 삶의 비유라는 생각조차 든다. 열심히 돌보아보았자 살 수 있는 날은 제한되어 있어, 점점 더 여기서의 마지막 날이 다가온다. 돈과 시간과 정성을 들여 밥과 약을 먹여도 결과는 정해져 있다.
단지 우리와 모리가 다른 건, 우리는 그 끝이 좀 더 뒤의 막연한 어떤 날로서 아직 미지에 잠겨 있고, 모리는 병세의 일반적 전망에 따라 수주~수개월 사이로 좁혀져 비교적 당장 다가와 있다는 것뿐.
돈과 시간과 노력과 정성과 그 외의 마음을 다하여 보상 없는 그날을 위해 걸어가는 것. 보상이 보장되어 있지 않은 정반대의 귀결을 알면서도 끝까지를 살아가는 것.
그런데 그 마지막 지점을 끝이 아니라 마무리라 부르고 싶다.
그리고 이 세상은 애초에 보상을 받는 공간으로 설정되어 있지 않기에 기대할 것도 없다. 그러니까 들렀다 가는 곳이지 정산을 하고 휴식하는 장소는 아닌 셈.
또한 여기에서의 삶은 모든 가능한 삶 중 일부의 모습으로서 소문자로 쓰일 만한 것이라면, 대문자로 씔 법한 삶이란 여기에서의 짧은 생을 넘어서는 훨씬 포괄적인 것으로, 이승과 저승, 전생과 현생 내생 그 이상을 아우르는 영혼의 장구한 역사.
베개처럼 쓸 수 있는 작은 인형 일곱 개가 배달되어, 하루에 하나씩 갈아주고 있다.
3월 초에 선고를 받았을 땐 3월 안에 모리가 떠날 수도 있다 여겼는데 어쨌든 3월은 넘어간다.
3. 31.
그저께엔 작정한 듯이 우크렐레를 수리하러 갔다.
고장 난 채로 두 달 가까이 벽에 방치되어 있었다.
모리 턱의 이상이 발견된 것이 2월 5일, 그리고 그다음 날인 6일엔 갑자기 소리가 나면서 우크렐레의 브리지가 튕겨 나가더니 줄들이 모두 떨어져 나갔다. 이 악기를 처음 샀던 가게에 가져가면 쉬 고쳐질 것이지만, 그동안 이걸 들고 시내에 나갈 경황이 없었다. 지난주는 후두염으로 계속 근신 중이기도 했다.
우크렐레를 그대로 두고 보자니 그동안 찜찜했다.
벚꽃이 만개하는 날 악기 상가 일대에도 화사한 빛이 흘렀다.
지도를 돌려보니 그 악기가게는 악기상가 밖에서 안으로 이전해 있었다.
아저씨는 쿨하게 두고 가라고 했다. 11년 전에 산 것인데 AS 해주신다고 했다.
여기서 나와 교보 들렀다, 화가님 전시회장에 또 한 번 들르고선, 귀가하는 이동 경로 차편이 애매해 택시를 탔다.
집까지 오는 동안 기사 아저씨는 잠시도 말을 쉬지 않았다. 그 시작은 신호등 정차 동안 옆의 차에서 창문 밖으로 얼굴을 내민 한 마리 개를 시발점으로, 반려동물 키우는 이야기, 소가 힘이 없을 때 먹여야 할 것들, 서로 상극인 동물들과 음식 궁합에 대한 민간 상식들, 까지는 들을 만도 했다. 그런데 곧 아닌 게 아니라 요새 선거철이라 택시 바깥으로 유세가 한창인 허경영 이야기로부터 정치 이야기로 넘어가서는, 결론은 전직 대통령 누구만 오지게 불쌍하다. 아무리 털어봤자 쌓아둔 재물이라고는 나오는 것이 없었다 등의 이야기로 입에 침을 튀기며 이어갔다. 그는 이 전직 대통령이 내년엔 사면될 거라고 당연히 믿고 있었다.
후두염은 일정 정도만 가라앉고 시원히 낫지는 않고 있다. 원래 진행이 그런 증상인지.
이상하게도, 우크렐레 고치러 외출했다가 온 후에 머리가 굉장히 아프면서 묘한 불면에 3일간 시달렸다. 잠이 안 오는 것은 아닌데 아침 가까이 계속 깨면서 머리가 맑지 않다.
아직 집 안의 신전과 식탁 위에는 벚꽃 접시가 놓여 있다.
특별한 날을 위하여 누리는 작은 호사들. 비 오는 날을 빙자하여 믹스 커피를 마신다. 커피는 하루에 한 번으로 제한하고 있지만, 비 오는 오전에는 한 번 더 허용한다. 오전에 마시는 커피는 수면에 큰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 임상적으로.
또 하나의 호사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메뉴 중 하나인 만두를 먹기로 했다. 동물병원 오가면서 우연히 본, 새로 생긴 곳이 좀 맛있는 체인이라 들은 것 같아서, 저번에 미리 결심해 두었다.
꾸던 꿈을 연장하여 꾸려고 이불 속에서 미적거리는 동안, 내가 자는 방 앞에서 오늘따라 두 마리 고양이가 같이 울어댔다. 약간 높고 또렷한 모리의 울음소리, 아침에 그 소리를 들을 때면 벌떡 일어나진다. 언제까지고 들을 수 있는 소리가 아닌데 하면서.
세 마리 중 제일 장수하게 될지 몰랐던 삼색묘 로리도 생일이 봄이라 이제 스무 살이다. 이 아이는 햇빛 좋은 날이면 두 겹의 창문 사이로 자주 들어간다.
어느새 또 한 명의 천사가 떠난다.
가끔씩 나타나는 예외적인 인연들이 있다. 어딘가 내가 버거운 나날들을 보낼 즈음 슬그머니 나타나 일정 기간을 함께 하는. 평생을 두고 연락하거나 하지는 않고서, 어울리는 그 시기가 사귐의 전부이고 말지만, 일정 거리에서 나를 보살펴주어 그 시기를 부드럽게 넘어가도록 도닥거려온. 이런 천사들은 그 시기가 다할 무렵이면 대개 떠나가곤 했다.
이번엔 그 인연이 치료사의 모습으로 나타났었다.
지난겨울의 초엽 알게 된 그 병원에 출석 도장을 부지런히 찍어 왔다. 여기서 목 디스크란 말을 듣고 도수치료까지 받게 되었다.
그런데 여기 도수치료사인 여자분은 작업 스타일이 사무적이지 않았다. 끊임없이 나와 이야기를 하면서 이 상호작용 속에 근육들을 매만지곤 했다. 내가 수다쟁이라 그런가, 이래도 괜찮을까, 이분이 힘들지 않을까 싶어 가급적 입을 다물고 있어야겠다, 생각도 들었지만, 이 분뿐 아니라 이곳 치료사들의 분위기가 이렇다는 걸 알게 되었다. 치료사들이 환자들과 대화를 나누며 작업을 하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던 날들 중간에 모리 투병의 날들이 시작되어 흘러갔다. 그녀가 풀어주는 손길이 더 큰 위로로 다가오곤 했다.
어느덧 그녀는 내 책을 궁금해하기도 했는데, 개명 후인 지금 이름으로 검색하니 찾아질 리가 없었다.
복작이던 3월이 지나며 지난주 화요일 그녀는 내게 시간 되면 주중에 한 번 더 오라고 했다. 다음 주면 여기를 떠난다고. 그래서 어제 한 번 더 들렀다.
어제는 선물처럼 노란 고양이가 나타나 주었다. 내가 오래 먹여오던 노란 고양이. 요새 보름 이상 사라져 나타나지 않았었다. 그러다 어제 불쑥 나타났다.
그저께는 우크렐레도 찾아왔다.
모리가 함께 하는 마지막 생일을 보내고서 언젠가 맞을 더 한적해질 날이면 여행을 가고 싶다. 내가 여행이라는 과정에서 무엇보다 좋아하는 부분은 어디 가서 좋은 걸 보거나 먹거나 하는 것보다, 오가는 차편 속에서의 시간이다. 운전을 하지 못해 필연적으로 누군가 운전해주는 차에 실려, 밖에 흐르는 비일상적인 경치들을 감은 눈까풀 밖으로 스쳐 보내면서, 그냥 하염없이 가는 일. 듣던 방송의 내용이 희미해지며, 깸과 깊이 잠듦, 그 사이의 어떤 나라, 바깥과 안쪽의 풍경들이 섞이며 풀어지는 곳, 바깥 세상의 경계가 사라지면서 마음 세계의 내밀한 곡절들의 선線만 협곡과 해안을 이루는, 그 익숙하고 늘 새로운 어슴푸레로 떠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