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공상 속에서만 살았다. 언제까지고 부모와 선생의 자랑거리로서 대학 가는 그날까지 우등생으로 남았다. 끝까지 모범생을 연기했다. 또 성당에서는 방학 중에 아침 미사를 꼬박 나가며 교리 경시 대회에서 상을 타 추기경으로부터 메달을 받고 있기도 했다. 타인들과의 연극에서 빗나가지 않은 채로 살았다. 내가 다른 이들의 욕구를 풀어주는 역할로부터 완전히 기력이 소진될 때까지.
설명이 안 되는 일들을 겪었다 해서 매번 고슴도치처럼 가시 돋친 채 사람을 대하거나 지레 공격적이 되거나 할 힘마저 없었으므로, 될 수 있는 한 내가 속한 모든 장소로부터 번번이 도망치곤 했다.
용서라는 용어는 너무 도매금 같은 말이라 도무지 싫다. 그리고 ‘피해 의식’이란 말 또한. 이 말은 피해 당사자들에게는 너무나 불명예스러운 말이다. 그냥 ‘피해 받은 아픔’이라 표현되기를. 또한 망각과 승화를 함부로 강요하지 말 것. 타인의 고통에 대고 얄미운 시누이 노릇을 하지 않으려거든. 나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대로 분노할 것이다. 분노는 권리이다. 분노 자체를 수치스러운 것으로 여기게 만드는 것은 이중의 억압이다. 용서와 화해, 망각과 승화 권하는 사회, 무섭다. 나는 오프라 윈프리가 아니다. 성공할 만큼 성공하여 자신의 흑역사를 자기 발아래 결연히 디디고 설 수 있었던 그녀가 아니다. 나는 같은 경험을 했으나 오프라 윈프리처럼 되지 못한 나머지 99%에 속해 있으니 그들을 대변한다. 설령 내 과거를 이겨낸다손 치더라도 다른 이들에게까지 그렇게 하라 권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그들을 다시 한번 죽이고 소외시키는 일이다. 고통에 대해 극복과 성공의 신화를 쓰지 않을 것이다. 승자, 있는 자, 이긴 자, 있게 된 자의 잘난 척하는 공식과 논리에 나를 내어주지 않을 것이다.
외적으로 버젓이 규명되고 사과와 보상을 받기는커녕 지금까지도 계속 가족들은 내가 비밀을 꺼내어 문제로 삼길 버거워하여 은폐와 망각을 강요할 뿐이다. 이런 현실을 이어가느라 나는 그 대가로 극도의 신경쇠약을 걸머지고 살 뿐이다. 비밀의 출구가 없는 것이다.
지금도 어떤 사각지대에서 신음할 영혼들. 외국 심리학책에는 ‘근친상간의 생존자들survivor’라는 표현이 쓰인다. ‘생존자’란 단어는 흔히 전쟁이나 자연재해에서 살아남은 경우를 지칭한다. 이렇게 겨우 ‘살아남은’ 정도의 심각성에 고작 망각이라는 치유제를 들이댈 수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망각이 가능해지려면 죽다시피 해야 한다. 겨우 미뤄둘 뿐이다. 그리고 내가 ‘생존자’인지조차 모르겠다. 나는 이제 나무랄 데 없이 행복해 보이는 가정에서 어쩌다 하루 묵게 될 때마다, 그다음 날 아침 남향 거실에 가득 쏟아지는 순수한 햇살이 내 존재 가득 어색하고 민망한 그런 사람이 되어있다. 이 세상 속 뭇 행복한 가정들의 창문 앞, 나는 가득 서린 김에 그려진 한 개의 물음표가 되어 선다. 내가 부당한 존재인 것만 같다.
어느새 삶의 퇴적층 아래 깔린 유년. 지난 일이라고 다 괜찮지는 않다. 물을 주지 않아도 사시사철 잘 자라는 식물, 이는 자기혐오라는 과科에 속한다고 한다. 이 식물은 환멸을 토양으로 하여 그 끈끈이주걱 안으로 의욕들을 삼켜버린다. 증오보다 나빴던 것은 존재에 아로새겨진 시니시즘. 그 모든 악재에 무방비했던 완전히 쓸모없던 나 자신을 수도 없이 제단에 올렸다. 나는 갈래갈래 무너져 빛이 들까 말까 한 심해 언저리를 오가고 있었다. 다 잊은 듯 훌쩍, 미래 시제로 건너갈 수 없었다.
한 번 된통 운다고 울음이 방전되거나 마르지는 않는다. 나는 평생 같은 일로도 매번 울 수 있다. 포에는 가끔 햇빛과 이슬비가 공존하는데, 나는 이게 더 아름답다. 모든 비를 말리는 햇빛보다도 슬퍼하는 자 옆에서 조용히 등 두드려주며 ‘알아, 알아’ 하며 미소 짓는 햇빛.
바람 가득 비파 소리, 흐느끼고 싶어진다. 포라는 요람을 떠나 바람과 비의 대지를 가르며 언젠가 ‘나’였던 인형을 다시 만난다. 곧 왁자지껄 섬나라를 종횡으로 가로지르며 그녀를 부활시킬 것이다. 망실증에 걸린 어린 혼에게 기억시켜야 할 꽃의 잔향들. 처음 보는 호수와 성, 백조와 수선화, 햇볕이 쏟아지는 해변, 요정이 나온다는 전설의 호수, 도로를 누비는 아일랜드의 무심한 양들, 런던의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의 2층 좌석 사이, 슬그머니 그녀는 눈뜰 것이다. 어떤 곳에 자기도 모르게 끌려 맴돌다 돌아오자 아픈 것이 나아 있다, 개인마다 그런 곡절曲折의 선계仙界가 있다.
벌써 유럽에서의 반년. 척도를 들이댐 없이 순진무구한 대화들, 해가 되지 않는 눈빛들, 포옹, 미소, 이런 것들이 터진 실밥 사이로 들어와 묵은 밀짚 대신 푹신히 자리 잡았다. 이제 헝겊 인형은 작은 바늘을 들고 있다가, 안이 어지간히 다 채워지길 기다려 가장자리 몇 땀만 떠서 마무리해 주면 된다.
무려 다섯 시간을 달려 요크의 B&B에 도착한다. 그게 벌써 오래전 일인데, 지금 내가 바로 거기 주차장에서 차 문을 열고 내려 숙소에 들어가고 있는 것만 같다.
우리는 여장을 풀기가 무섭게 밤마실을 나선다. 펍을 체험하기 위해서다. 겨우 수선화 몇 송이 피었을 뿐인 쌀쌀한 3월 저녁이었음에도 젊은 여자들은 끈 원피스로 차려입고 여기저기 밤마실을 다닌다. 에리나는 각각 다른 분위기의 두 개의 펍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라거와 에일을 고루 마시고 돌아온다.
영국의 숙소들은 프랑스보다 훨씬 높고 널찍하고 시원시원하니 쾌적하다. 단, 온수 냉수가 따로따로인 수도꼭지는 불편하다. 방 한구석, 네 개의 찻잔들은 서로 잘 포개어 엎어져 있다. 영국의 이불은 포근해서 그 안에 쏙 들어가면 잠이 잘 온다. 오늘 밤, 내 검은 추억은 나를 더 이상 역습하지 못하리라.
살 맞을 듯한 삼월의 바람에
나목으로 견뎌온 살 밑에
숨 겨운 비파를 꺼낸다
이것은 물에 잠긴 자의 추억념
내 비파에 파고든
피부 아래 깃든
바람의 나라 끝에서 불도마뱀이 걸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