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본 첫 숙소의 보이지 않는 손

by 래연




아름다운 빛의 비쳐듬. 그리고 깨알같이 상세한 숙소 설명서(의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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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복도 장식들.







이건 갤러리인가?


엘리베이터 없이, 세월이라는 장인 아니고서는 불가하게 맨들 거리는 돌계단, 이어 나무계단을 걸어올라, 여기선 3층이라 불리지만 나의 다리는 어김없이 4층임을 입증하는 건물 꼭대기 층까지 올라야 하는 고스란한 고풍스러움을 포함하여, 비로소 그 완연히 현대적인 풀 인테리어를 접하자마자 절로 나온 탄성이었는데, 정작 이 체류는......






휴고의 거실





주인은 자신이 어디 다녀올 거라면서, 열쇠를 둔 위치서부터 방 찾아가는 법 그리고 집 사용 시 약간의 주의사항 등을 미션이라도 수행시키듯, 메시지로 낱낱이 알려주었다.

주인이 어디 가다니, 그렇다면 내 세상이군 이렇게 여겼지만, 당장 그날인가 다음날 저녁 돌아와 보자, 주인의 손길이 내 눈에도 뚜렷히 띄는 흔적으로 확인되었으니......



변기엔 내가 덮어놓은 적 없는 뚜껑이 푹 덮여 있었고, 세면대 아래 걸린 수건의 위치는 그 뒤편의 휴지 다발 쌓음이 안 보이게 가려주는 위치로 미세히 옮겨져 있었다. 주인 아니고서야 다른 투숙객이 이럴 리는.


여기까진 나의 짐작에 속하는 영역이고 이다음은 실제.


나는 주인의 옆얼굴조차 못 보고 그의 단순 기척 정도만으로 들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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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내가 본 적 없는 주인은 그 보이지 않는 손으로, 부엌에서 계란 세 개를 깨어 무언가를 만들다가 내 동행과 마주쳤다는데, 후문은 이러했다.


둘은 인사를 나누긴 했는데 친구는 그의 이름을 딱히 기억하지 못하여선, 아 이름을 잊었는데라고 하자 우고 Hugo는 -난 그의 이름만을 알고 있었다. 주방 벽의 메모지들 그리고 거실에 스스로 그린듯한 그림에 든 사인을 보고 그가 위고 혹 후고 혹 휴고일 줄은 알았지만 정확히 우고라 읽히는 줄 몰랐을 뿐. -


"그거 다 내가 집 사양과 함께 적어놨을 텐데?" 라고, 자기 이름을 잊었다는 말에 '뭐 그럴 수도 있지, 그것쯤이야' 와는 분명히 차이가 있는 어떤 난감함을 표정에 띄웠다고 한다, 우고는. 거참 발음도 잘 안 되는 우고는.





그의 정갈한 주방





이어 우고는 할 말이 있다며 친구에게 재활용 수거함을 열어 보였다 한다. "이거 너가 버린 거지? " "응, 그런데?"

실은 내가 버린 거였다. " 이건 여기가 아니라 이 뒤에 페트 버리는데가 있거든. 거기 버려야지." "몰랐어, 얼른 보아지 않아서....... 미안해." "미안해할 것까지는 없고, 그런데 이걸 이렇게 죽 뽑으면 뒤에 나온다고, 다 거기 적어놨는데?"



친구는 따로 받은 집 사용설명서와 부킹사이트의 부가설명란을 살펴보다가 너무 길고 상세해 다 읽지 않았었는데 다시 보니 매우 꼼꼼히 모든 사항이 기재되어 있었다고 한다. 이를테면 샤워는 지구가 물 부족을 겪고 있으니 reasonable 한 시간 내에서, 그러니까 5분 정도에 마쳐주시고 등등의 내용이 말이다.



그러니까 우고는 리스본이라는 낯선 도시의 초보 여행자인 우리들에게, 리스본 사람 수준, 개중에서도 썩 시민 수칙을 모범적으로 잘 준수하는 계층의 생활 조항들을 부리나케 숙지하여 몸에 순식간에 스며들게 하여 자동 재생되는 경지를 요구하는 참이었다.













그런데 친구가 경험한 바로는, 그 어느 부킹사이트의 숙소에도 그다지도 자세한 조항을 적어놓은 경우란 없었다고 한다. 공란이 대부분이고.

어쩐지 그 첫 숙소에서는 가만있어도 숨이 조여왔고, 발뒤꿈치를 들고 걸어야 할거 같은 공기 속에 있었다.



마침내 거길 떠나면서는 짐을 어느 때보다도 꼼꼼히 체크했다. 뭘 두고 가거나 해서 무슨 발미로든 다시 연락하게 되는 일만큼은 없어야 돼, 이렇게 중얼거렸다.














하필 처음 만난 곳이 예외적인 곳였다.


이후 숙소들은 널럴했다.






거리 쇼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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