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렌지 고독사

by 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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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위로는, 능히 1,2차 대전을 지켜보며 서있었을, 성황당 수준의 아름드리 느티나무들이,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보자기에서 뚝뚝, 물이 떨어지지 않게끔 널따란 손바닥들을 급히 벌려 하늘의 그늘을 얼기설기 짓고.




무슨 이유에선지 여왕이 사랑하였다는 이 곳 마을 오비두스, 성곽 아래 공터는 소풍 온 청소년들의 손뼉과 웃음소리로 가득한 만큼, 바로 이런 얘기를 거리낌 없이 누군가에게 하지 못하는 상태가 바로 '고독'아닌가, 문득.


있는데 안 하는 것과 없어서 못하는 것, 고독에도 이런 차별이 있다.











말을 할 수는 있다. 들을 사람이 피로하거나 잠들어 있거나 바빠 건성이거나 어떤 골똘한 근심이 없는, 이 느티 광장 같이 휘휘, 쾌적한 바람만이 흘러 다니는 공터가 어디 기다리고 있을라구. 세상은 그렇지 않다는 게. 막상 말 걸 만한 사람이란 건 그 수많은 인류 중에......



나도 남의 침묵을 쉬 꼬집지 않기로 한 게 올해의 결심이었지. 반갑게 아는 척하기를 예전의 삼십 분의 일로 줄이기로 한 것이다. 위로에도 극 세심이 따르지 않으면 침해가 되고 말아. 그 언젠가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보다 하다 못해 나쁜 일이라도 일어나는 편을 좋아했었지만 이젠 아니다.











주소록을 열어 내 수중의 인류를 탐색해서는 내가 마음의 세계에서 얼마나 헐벗었는지를 확인하고는, 내 지붕 처마 아래 고드름을 떼내 오독오독 깨물고.


고독도 세게 깨물면 이빨 나간다.



이럴 때 느티나무 뒤에서 작은 쥐꼬리와 두 귀가 쫑긋 보여준다면, 니 마음 다 알아 하는 소리로 들을 텐데, 잎이 바스락거리기에는 아직 가을은 한참 푸르러 싱싱해, 쥐꼬리털은 촉촉하다.


하늘 한 번 보고, 갓 짠 오렌지 즙 죽 들이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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